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태완 Jun 04. 2021

쉬지 않고 비가 쏟은 날


비는 쏟는 것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무게가 조금씩  무거워진다. 그렇게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무게가 도둑처럼 몰래 더해지다, 어느 순간부터 쉽사리 맞아낼  없을 정도의 육중한 몸집으로 이곳에 투신한다.  때문에 우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가 쏟는 철이면 괜스레 몸을 웅크리거나 스스로를 아주 고립시킨다. 낯익지만 결코 반갑지만은 않은 무언가에 의해 세게 짓눌리듯. 그러니까 일종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는 셈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겹겹이 쌓여가는 슬픔이나 고독 따위의 일방적인 고통을, 그것들이 한낱 비의 형태로  세상에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꼴을 창문 하나 사이에 두고서 멀뚱히 지켜보는 일일 테니까.


우리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이 얼마큼의 슬픔을 품고 사는지 알지 못한다. 개인마다 그 짙푸른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틀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데, 무의식에 정해놓은 허용 범위를 훨씬 뛰어넘을 만큼의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낸 이들은 자신의 슬픔을 헤아리는 일을 곧잘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는 나는 지금 내가 얼마큼의 슬픔을 품고 사는지 헤아릴 수 없을 때면 늘 비 소식을 기다린다. 비가 쏟는 날에 내가 얼마나 웅크리게 되는지, 나 자신을 얼마나 깊은 구렁텅이로 고립시키게 되는지 확인하는 순간, 나는 내가 가진 슬픔의 크기를 몸소 느낄 수 있다. 내가 그간 얼마나 많은 아픔을 외면하며 살아왔는지 명징하게 알 수 있다. 가진 슬픔의 몸집이 큰 사람일수록 쏟는 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기 마련이니까.


종국에는 영원할 것처럼 쏟던 비도 모두 멎고 잔뜩 찌푸렸던 얼굴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겠지만, 한번 가슴께에 스민 슬픔은 애초에 옅어지는 성질을 가진 적 없으니 우리는 또다시 슬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처럼 진종일 비가 쏟는 날이면, 어쩔 수 없이 내 슬픔을 내 눈으로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슬픔은 그렇게 영원함으로써 우리의 삶 가장 중요한 부분에 가득 들어찬 채, 틈틈이 비 소식으로 찾아와 끝끝내 쏟아져 내리고 만다.           

매거진의 이전글 곤히 잠든 네 얼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