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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Mar 28. 2020

달은 지워지는 법이 없다

하필이면 글을 쓰는 삶을 택해서
쓰는 문장마다 네 이름 발굴되는 순간 따위가 허다했다

네가 아무리 해맑은 얼굴로 내 뇌리에 걸쳐진들
이 머리 위에 먹구름 걷혀진 적 없었고
쏟히는 비는 하수下水보다도 지독하게 나를 삼켰다

수차례 구겨진 사진 한 장을 나는 몇 번이고 다시 펼쳤다
그곳에 동화인 듯 수수하게 들어앉은 네 두 홍채에는
여전히 사랑처럼 아찔한 기운이 완연한데
우리의 작별에 좀처럼 어려움 없었다는 것이 문득 억울했다

삶의 끝까지고 변치 말자던 약속이 겨울보다도 시들었고
정작 그 끝이라는 곳에 얼굴을 들이민 건 우리네 사랑이었다

이제는 정말 입술 위에 얹지도 못할 네 이름
이 글의 언저리에 혈관처럼 무한히 떠돌았고
염치도 없이 그 이름 요란스레 발음해보다 그만 크게 울어버렸다

원고지 위로 삶처럼 투신한 눈물을 황급히 닦아내자
네 이름 몇 개가 달보다도 커다랗게 번지며 지워졌다
이대로 몇 밤만 더 울어 저 먼발치의 달까지도 지워버리면
그다음의 아침에는 네 이름 전부 잊을 수 있을까 싶어

하필이면 하늘 흐린 탓에 달이 가려진 것도 모른 채
나는 오늘 밤 창밖이 파래지도록 내내 울었다
_
<달은 지워지는 법이 없다>, 하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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