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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May 07. 2020

짙은 여름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을로

우리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곳


풀 내음이 여름비처럼 쏟습니다
내 시선이 울창하게 빚어놓은 환상에선
청록의 산새들이 주린 배를 채우고
이슬을 머금은 소식으로 고단한 여행가는 목을 축입니다
드디어 내가 축복하는 문장들의 낙원을 찾은 겁니다

내 삶이 숲처럼 길게 이어질 수 있는 곳이 여기에 있습니다

옅은 녹빛을 내는 청개구리 한 마리가 발치에서
어미 무덤 떠내려갈 걱정 없는 그곳으로
저도 함께 가자 배를 뒤집은 채 떼를 씁니다

꽃등에가 잔상처럼 손에 닿을 듯 말 듯 하는 날
가는 계절의 이름을 차마 묻지 못한 아쉬움이
반가운 이의 체취를 맡은 백구처럼 빙빙 돌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여행가에게 건네받은 지도를 가슴께에 슬쩍 품고
내가 사랑하는 세계를 향해 힘찬 발돋움을
두고 온 청개구리에게 미안함을 전하렵니다

비처럼 쏟던 풀 내음에 나는 왠지 흠뻑 젖었고
끝끝내 내가 사랑하는 여름에 도착했습니다

여름비가 풀 내음처럼 푸르게 쏟는 날입니다
그러는 나는 이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밖에요

_
<짙은 여름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을로>, 하태완

2020. 5. 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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