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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May 09. 2020

누군가 기억하는 이름과 이야기

어버이날


앞집에는 지독한 치매를 앓고 있는 노모와
그에 버금가는 주름이 손금인 듯 묻어있는
다 큰 아들 하나가 오손도손 살았었다 했다

매 끼니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상다리를 휘청거리게끔 하는 아들이
그날은 짭조름한 박대젓을 식탁에 올렸다

노모는 한 입 맛보더니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는
하나뿐인 아들놈이 이걸 억수로 좋아해요 했고

흐를 듯한 눈으로 가만히 지켜보던 아들은
그 아들놈 저 엄마가 박대젓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 지겹도록 자랑합디다 했다

저승 같은 저녁볕이 검게 검게 드리우던 날
방심한 아들의 시선에서 가뭇없게 사라져 버린 노모가
마당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옛 사진첩
이렇게 들여다보며 매달린 시절들을 닦아내고 있었다

어머니 왜 여기 나와서 있습니꺼
어두컴컴하고 날 추운데 그만 들어갑시다

니 참말로 고생 많제
내가 제때 죽었으면 니도 한결 편했을 텐데

워메, 우리 어무니 간만에 정신 멀쩡하시네
시답잖은 말 그만하고 내 이름 한번 불러 봐요
이 아들래미 이름 석 자 여태 기억 하나 보게

초령목 이파리들 여름밤 사이로 제철인 듯 흔들리고
노모는 힘겨운 듯 몸을 일으키다 한번 휘청

우리 아들래미 김봉철 제가 억수로 사랑해요 했다

기억이 시간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마을에는
비록 저 이름 남김없이 모두 잊었어도
자식새끼 이름 석 자만큼은 영겁의 시간인들
단 한 줌도 내버리지 않을 노모가 살았었다 했다

이제 당신보다 내가 더 오래 살았습디다

어찌 된 일인지 홀로 남겨진 다 큰 아들 하나가
어무니, 하고 낡은 치맛단에
얼굴을 파묻고서 진종일 울었다

_
<누군가 기억하는 이름과 이야기>, 하태완

2020. 5. 8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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