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서막
- 너는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 아마 우리는 결혼은 어렵지 않을까?
한겨울의 저녁, 식사 전 가볍게 찾은 바에서였다. 맥주를 앞에 두고 그는 뜬금없는 한마디를 던졌다.
당시 그와 나는 2년차 장거리 연애 중인 5년차 커플이었으며, 나는 오랫동안 힘들게 다녔던 직장에서 떠나기 위해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뗀 운에 잠시 당황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사귀던 5년 동안 한 번도 그로부터 자기는 꼭 아이가 있어야만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처음 듣는 얘기야.
다만 기억이 나던 것은, 내가 딩크 얘기를 할 때마다 이유 없는 긴 침묵을 날리던 그의 모습이었다. 왜 그 몇 번의 순간 동안 나는 그 침묵의 의미를 곱씹어 생각하지 않았을까? 당황스러움과 놀라움으로 눈을 깜박이던 나에게 그는 단호히 말했다.
- 내가 말하지 않았을 리가 없어.
이것이 모든 것의 서막이었다.
맥줏집에서의 짧은 사건 이후 그는 평소와 다를바 없이 행동했고, 그렇게 그와 나는 한동안 다시 잘지냈다. 마치 그런 이야기는 없었던 듯. 그리고 그 사이, 나의 이직이 결정되었다. 맥줏집에서의 짧은 이야기는 이직이 결정된 후에 천천히 해보기로 대충 마무리가 되었던 터였다.
내게 선택은 두가지 였다. 하나는 그와 여전히 장거리이지만 그래도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곳. 다만 근무 여건은 좋지 않음. 다른 하나는 근무 여건은 좋지만 비행기를 타고 멀리멀리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내가 거리는 상관없이 근무 여건이 좋은 곳에 가기를 강력히 추천했다.
이삿짐을 싸기 전, 각종 가구를 정리하던 날. 내가 살던 그 곳의 밤은 어둡고 깊었지만 그 날은 유독 그리했다. 날 도와주러 먼길을 달려 내 집에 방문했던 그는 한 차례 일이 마무리된 그날 저녁, 다시 입을 열었다.
- 시간을 가지자. 나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고 어떻게 살지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해.
나는 당연히 우리가 함께 할 줄 알았다. 서로 가치관의 차이는 분명 있을 테지만, 이제 이직으로 인해 나도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었으니, 이제 천천히 서로 얘기하고 조정을 하며 미래를 그려나가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기 인생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 이제 한동안 어차피 일년에 한 두번이나 볼텐데 인생 생각 충분히 하는 건 좋아, 근데 이건 무슨 소리야?
그는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자기 '혼자' 인생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자기 인생을 생각하는 건 좋아, 근데 왜 거기에 나만 꼭 빠져줘야되는거지?
- 난 이해 못하겠어. 너 혹시 다른 여자 생겼어?
나에게는 정말 그것 밖에는 떠오르는 이유가 없었다.
그는 펄쩍 뛰며 그 말을 부정했다. 그리고 말했다.
-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아이를 가지려면 빨리 가져야 해. 시간을 가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한 후에 아이를 가지고 싶다면 결혼을 빨리 해야 할 것 같아. 40세가 되기 전에 아이를 가지고 싶은데 이제 시간이 없어.
그리고 잠시 이어진 그의 말에서 나는 그의 결혼관에 대해 처음 알았다. 사귀는 내내 몰랐던 내용이라 꽤나 충격적이었다. 배우자에게서는 어떤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지 잘 모르겠고 결과적으로는 사랑으로 시작해도 그 사랑은 식을 것이라는 것. 그나마 삶의 의미는 자녀에게서 찾는 것이 맞으며 어른들에게 들어왔듯 배우자와는 그나마 아이를 기르며 쌓이는 정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이야기. 그에게 있어 결혼이란 자녀를 가지기 위해 하는 것이었다. 그 결혼관은 굉장히 보수적이면서도 보수적이지 아니했고, 그간 상냥했던 그 답지 않으면서도 때로 매우 개인주의적인 면모를 보이던 그 다웠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안 사실. 우리가 사귄지 3년차가 되었던 2020년, 우리가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을 때 이미 그는 헤어짐을 생각했었다는 것도. 코로나가 터지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당시에 참 사이가 좋았던 지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를 놓칠 수 없었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그렇게 문제라면야. 몇 주의 유예 기간 후 나는 나의 입장을 정리하여 전달하였다.
- 나는 기본적으로 딩크로 살고 싶지만, 너가 정 원한다면 하나는 가질 수 있어. 다만, 아이를 어떻게 길러낼지 여건에 대해서는 서로 대화가 많이 필요하겠지. 나는 아이를 독단으로 부담하고 싶지않아. 나는 계속 일을 하고 싶어. 그런데 적어도 너가 생활하는 모습을 여태 관찰한 바로는 아이가 생겼을 때 내가 아이를 독단으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 같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딩크로 살고자 하는 내 입장을 바꾸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이에 대한 인생관의 차이로 인해 아름답고 깔끔하게 합의 이별하는 시나리오가 그려져 있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낳지 않고는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무엇인가의 이유가 있었고, 다만 그는 그것을 솔직히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확실한 것은 5년 동안 함께한 시간이 나와는 달리 그에게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그래, 그래서 내가 아주 먼 곳에 가는 것을 적극 찬성하고 또 권장했던 거구나.
이와 비슷한 대화는 4개월동안 무한정 지속되었다. 그를 붙잡으려는 나와 좋게좋게 끝내고 싶었던 그, 그렇게 한 달 정도의 숙고의 시간과 잠시 3달 간 불안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던 재회 기간 후 그는 결국 나를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사이 나눴던 대화 안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여백이 존재했다. 나를 만날 때마다 그의 표정은 항상 굳어 있었다. 그는 마치 하루 아침만에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아무리 그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보려 해도 그 여백과 그 굳은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아니 설명하지 않은 것뿐일지도 모른다.
헤어지자는 말을 수십번은 들은 것 같다. 때로는 카톡으로, 때로는 전화로. 그 때마다 이유는 달랐다. 그래도 바보같이 나는 그를 그렇게도 붙잡았다. 함께한 그 긴 세월이 너무 소중해서, 그를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낼 수 없어서.
마지막 통화는 회사 사무실에서였다. 내 생일 바로 다음날이었다. 어쩐지, 내 생일에 통화하면서 우리 겨울에 보냐는 말에 침묵하던 그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그는 이제 새로운 여자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가슴이 꿰뚫리는 느낌이 들며 더이상 그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거기서 그를 놓아주었다.
그렇게 그는 총총 떠나갔다. 그렇게도 사랑하는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 보기 위해.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