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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탠저린 Oct 30. 2022

가장 쉽고 가장 어려운 질문, 여행의 이유

#18  퀘벡, 캐나다



왜 여행을 하는 거야?
언제부터 여행을 좋아하게 됐어?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꼭 들어봤을 질문. 여행에 관한 숱한 질문들을 들어왔지만 '여행의 이유'에 관해서는 명쾌한 답을 내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공표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주제는 항상 나를 숙고하게 한다. 단순하게 '행복해서', '새로움이 좋아서'라고 대답하면 되는 것을 왜 이 질문은 유독 말문을 막히게 할까.



20대 초반의 나는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들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신선한 자극에 굉장히 매료되었다. 내게 여행은 모든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의 집합체였고, 잔잔한 일상에서 깨어나 나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 강렬함에 중독되어 평화로운 일상에 균열이 생길 때면 그 틈 사이로 피어난 여행이란 끈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끝이 어디일지도 모르면서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정말 열정적으로 여행을 했던 시기였다.


배낭여행을 꽤나 다녀 어느 정도 여행 경험치가 쌓였다고 자신하던 때 급작스럽게 무뎌진 감각에 혼란스러웠던 날이 있었다. 스물일곱의 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퀘벡으로 향하던 버스였다. 창밖으로 시시각각 변해가는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난 여행을 정말 좋아해서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현실적이려고 유독 애쓰던 그 시절의 나는 낯선 땅에 혼자 있을 때면 눈물이 날 것 같은 알 수 없을 깊은 감정에 빠졌다.


그리고 그날 숙소에서 만났던 네 살 어린 동생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아이의 순수함을 보며 마냥 모든 게 좋았고 행복했던 나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불과 4년 전의 나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여행하며 마주하는 새로움에 기뻐했다. 특급 열차가 아닌 완행열차에서 일기를 쓰고, 돌계단에 걸터앉아 그리운 누군가에게 엽서를 썼다. 단 1유로짜리의 바게트로 끼니를 때웠지만 예술 앞에서는 망설임이 없었다. 행선지 없이 무작정 거리를 걸었지만 도시의 흘러가는 순간은 놓치지 않았다. 사소한 일상 그 자체를 마음껏 누리고 받아들였던 그 시절의 나. 이미 익숙해져 버린 감정에 무뎌진 나는 지난 시간 속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이가 먹고 시간이 흐르며 여행의 이유도 바뀌어 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월이 더 지나면 그나마 남아있던 열정과 순수함마저 잃게 될까 두려워졌다. 하지만 되돌아 생각해보면 취향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나는 여전히 그대로 나였다. 어렸을 때 크게만 느껴졌던 학교 운동장을 어른이 되어 다시 보면 귀여울 정도로 작아 보이는 것처럼. 세월의 때가 묻고 경험이 쌓여 좀 더 단단해진 것일 뿐, 나는 변하지 않았다.


내게 여행은 온전한 나를 마주할  있는 시간이었다. 홀로 낯선 곳에 떨어져 있을 때면 나는 존재에 대해, 삶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흘러가는 구름과 새들의 지저귐,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사람들의 움직임, 도시의 소음 속에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현실의 급급한 일들에 밀려 알아차리지 못했던 감정을 다스릴  있었고, 나와의 대화를 거듭하면서 나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사랑할  있었다. 어제의 나를 돌아보고, 오늘의 나를 만나며, 내일의 나를 꿈꾼다. 나는 나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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