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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항녀 Jun 14. 2024

모순

나는 사람이 싫다.

정말 미치도록 싫다.

오늘 하루만 해도 몇 사람을 피하고 싶었나 모르겠다.

멀리서 싫은 사람의 언뜻 보이는 실루엣만 봐도 간이로 만든 내 책상 파티션 아래로 고개를 숨긴다.

고정된 곳에서 만나는 고정된 사람이 아니어도 싫다.

어린아이들은 그렇다 치고, 어른이라는 인간들은 나이를 먹고도 왜 기본을 못 하는지 모르겠다.

다 자란 사람이라는 뜻의 ‘어른’.

못돼 먹은 짓들을 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어른이라 생각지 않더라도 그 나이쯤 흔히 어른이라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어째서 그렇게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가끔 직장에서 자격시험 감독을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죄다 어른들인데, 다 자란 어른들인데 이런 사람들이 법을 지키나 2시간 내내 감시를 해야 하다니. 아이러니다.


화장실에 붙은 ’ 다음 사람을 위해 물을 내립시다 ‘라는 문구를 보면 또 아이러니다.


그런 문구를 봐야지만 물을 내리는 사람이 있을까.


방금 내가 들어와 있는 화장실 칸에서 나간 사람은 분명 어른인데 어째서 나는 그 어른의 배설물를 보게 되었을까.

어째서 그 사람은 나에게 배설물를 보여주게 되었을까.

영역표시인 걸까.


뉴스에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을 저지른 것들도 인간이고 어른이다.

역겹다.

똑같이 한 세월 살다갈거 곱게 살다가면 안되나.


나는 인간이 싫다. 그중에서도 어른이 정말 싫다.


그런데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내 옆에 앉아 내 감정을 훑고는 먼저 알아채주고 손과 마음을 다독여주는 사람이 좋다.  

처음 만났지만 위로가 필요한 것 같아 안아줘도 되냐고 물으며 내 막힌 눈물샘을 뚫어준 사람이 좋다.

얼굴은 본 적 없이 글자로만 쌓은 정에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이 좋다.

가방에서 저도 모르게 떨어진 휴지조각도 주워 다시 가방에 넣는 사람이 좋다.

어딘가에 어물쩡 서있는데 기분 좋게 말 걸며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 좋다.


비슷한 길을 걷다 어느새 같이 걷고 있는 사람이 좋다.


이렇게 싫다 좋다 글로 적고 있는 나도 어른답지는 못 한 듯하다.


그냥 나는 적당히 기본만 하련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좋은 사람 하련다.


그렇게 그렇게 인류애가 떨어졌다고 말하고, 인간이 싫다고 욕하고 다녀도 결국 좋아하는 사람은 또 많고, 사람 좋아지는 건 참 쉽다.


참 모순이다.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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