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없어요
어릴 때부터 아빠와 가족들과 영화를 자주 봤다.
시리즈로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적으로 보는 게 당연했다.
어릴 때라 이해하지 못해도, 잔인하거나 어려워도 꼭 보는 영화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 마블 시리즈, 슈렉 등등.
그게 아니라도 대작이라 하면 무조건 본다는 게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그중에 에이리언 시리즈도 있었다.
에일리언은 나온 지도 꽤 돼서 OCN과 같은 TV채널을 통해 봤을 수도 있고. 어쨌든 거의 다 봤다.
그래서 이번에 나온 ‘에이리언-로물루스’ 도 당연히 보는 거라 생각하고 영화관에 보러 갔다.
(여태 에일리언이라고 불렀는데 ‘에이리언’으로 바꾸자니 어렵다.)
에이리언이 뭐 그냥 외계인이지 뭐 있겠어?
'그냥 침 줄줄 흘리면서 여기저기서 고개 내밀고 조금 무섭게 하는 게 다겠지' 하는 마음으로 보러 갔다.
평점은 좋았고 리뷰도 괜찮았다.
(사실 크게 다른 사람의 평가를 신경 쓰지는 않는다.)
외계인 영화 평점이 어째서 이리 좋을까 싶은 마음으로 갔다.
그리고 Dolby Sound로 영화를 보는 게 좋다는 글도 봐버려서 '아쉬울 순 없지! 짱짱한 게 최고야' 하고 돈을 더 내고 소리 돌비관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것은 내 실수였다.
영화가 시작하고 나는 4D영화를 보러 온 줄 알았다.
돈을 더 낸 만큼 소리의 입체감은 장난 아니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막아도 내 귓구멍이 문젠지 손가락이 문젠지, 살은 쪄서 둘 다 잘 막힐 텐데도 불구하고 소리를 차단하지 못했다.
놀라는 장면에서 내 앞, 뒤, 옆 다 같이 놀라다 보니 의자가 들썩이고 또, 놀라지 않기 위해서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다른 사람들이 움찔하는 것에 덩달아 놀라고.
한 시간 정도 흘렀나.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분명히 나는 지금 지구에 영화관, 그것도 메가박스에 앉아서 영화를 보고 있을 뿐인데 마치 내가 우주선에 갇힌 기분이 들었고 외계인의 존재가 너무 무서웠다.
지금 글 쓰는 이 순간에 다시 영화를 보던 그 순간을 잊고 오만방자하게 ‘외계인 따위가 뭐가 무섭지?’하는 생각이 조금 들긴 하는데 그 순간 너무 무서워서 나는 동행을 두고 영화관에서 뛰쳐나왔다.
영화관 탈주는 롤 탈주보다는 쉽지.
돈을 벌기 시작하고부터 영화를 보다가 영화를 감당할 수 없겠다 싶으면 뛰쳐나오는 습관이 들어버렸다.
어릴 땐, 공포영화를 보러 가서 귀를 막느라 손가락이 휠 것 같아도 끝까지 보고 나오곤 했는데 공포영화가 아닌 스릴러물이라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싶으면 굳이 끝까지 앉아있지 않는다.
현생도 갑갑하고 스트레스받는데 돈 줬다고 영화관에서까지 2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얹어올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냥 사실 무서운 게 너무 무섭다.)
그래서 뛰쳐나왔고, 영화의 결말은 나의 동행에게 듣기로 마음을 먹고 나는 쇼핑몰 구경도 하고 책도 읽으며 릴랙스를 했다.
제일 처음 영화를 보다 뛰쳐나왔던 건 ‘장산범’인데 그 영화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하나도 안 무서운데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포기한 순간이 아이가 귀신에 빙의해서 귀신목소리를 낼 때쯤이었던 것 같다.
장산범을 시작으로 영화관 탈주를 자주 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탈주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과 겁이 많다는 걸 망각한 나는 어제 에일리언을 보기 전에도 수차례 중도퇴장을 하곤 했다.
퇴장하고도 고통스러웠던 영화는 ‘아바타 2’.
‘아바타 2’는 러닝타임이 정말 길다는 걸 인지했는데 중간에 너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가서 영화관에 종종 있는 안마기계 위에 누워서 안마도 받고 책도 읽고 하는데 워낙에 러닝타임 자체가 길다 보니 동행이 나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동행이 나오자마자 나는 ‘무슨 영화를 이렇게나 길게 만들어가지고 어쩌고 저쩌고’ 불만을 쏘아댔다.
지금 생각하니 좀 미안하다.
아무튼 어느 순간부터 나를 너무 소중히 여겨 가급적 현생 말고 다른 콘텐츠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한 때는 이런 행동이 나를 너무 나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어때!
내 돈 주고 스트레스까지 살 필욘 없잖아?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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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