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신나게 미역국을 끓이고 주인님들 밥도 챙겨주고 잠깐 넷플릭스로 ‘지구마불’도 보고 신났었다.
오늘은 신나는 날이다! 하며 매일 가던 카페를 가지 않고 빵이 맛있는 개인카페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옷은 편하게 흰 티 위에 원피스.
등에 지퍼가 있는 풍덩한 통짜 원피스다.
예전에 이 원피스를 입고 올리브영에서 쇼핑을 하고 있는데 외국인이 나에게 와서 어떤 물건을 달라고 했던가.
앞치마같이 생겨서 유니폼 같긴 하다.
그리고 한쪽 겨드랑이에는 영자신문, 반대쪽에는 책을 두권 넣은 가방.
아무튼 어제 분명 덜 먹기로 새끼손가락까지 걸었지만 새끼손가락을 잠시 풀어두고 어떤 빵을 먹을까 설레하며 나섰다.
오늘도 역시 날은 무지하게 더웠지만 발걸음은 신이 났다.
카페에는 이미 손님들이 몇 테이블 있었다.
혼자 먹는 것에 어려움이 없지만 혼자인데 웃으며 빵을 고를 수도 없기에 내 나름 도도한(?) 표정으로 카페 한가운데 있는 빵 매대 주위를 한 바퀴 돌며 빵을 골랐다.
그리고 계산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서 시크하고 도도하게 하지만 속은 신나게 영자신문을 읽으면서 소보로빵, 소금빵, 스콘을 먹고 있었다.
그렇게 즐기고 있는데 한 테이블에 있던 아주머니가 뭔가 나에게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옆자리는 비어 있었고 그 아주머니를 쳐다보지 않아도 시선이 느껴졌기에 나에게 온다는 것을 거의 확신했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내 원피스가 탐나서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려는 걸까?’하는 생각과 함께 어디서 샀었는지 기억해내려고 했다.
주책같지만 나는 내가 좋다고 느낀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이 원피스는 가격도 품질도 좋았다.
생각의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그렇게 약간의 긴장감을 갖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나를 톡톡 치셨다.
예상했다는 듯 무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고 아주머니는 민망하다는 듯 표정을 지으시면서 말했다.
“뒤에 원피스 지퍼가 안 올라가 있어요..”
”어머 어머, 어떡해요. 감사합니다. “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너무 민망해하자 아주머니께서는 내 지퍼를 올려주시며
”안에 옷 다 입었는데 뭐 어때요 ㅎㅎ“ 하셨다.
그렇지.
섹시백(Sexy Back)은 아니었다.
이렇게 내가 호들갑을 떤 순간 느꼈다.
내 표정이 얼마나 확 풀렸는지.
가끔 시크하게 혼자 길을 걷다가 발을 삐끗하면 시크했던 게 더 민망해서 인상을 쓰며 발을 이리저리 살필 때가 있다.
너무 아프지만 신발에 문제가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럴 땐 그래도 다른 사람과 눈빛을 주고받을 필요는 없으니 끝까지 시크를 유지를 할 수 있긴 하지만 부끄럽다.
아무튼 그런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가면을 썼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 가면이 나쁘거나 심각한 의도를 가진 건 아니지만 확 벗겨지려 할 때의 그 민망함.
어쨌든 다행히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많다.
오늘 내 원피스 지퍼는 다른 사람에 의해 올려졌다.
기분이.. 감사하다(?)
내 원피스 구매처를 알려드릴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한번쯤 외롭다 느껴지면 옷을 덜 마무리하고 외출을 해보셔라.
누군가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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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억수로 부끄러움의 후유증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