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가 오늘 아침 요양원에 전화를 걸어 한 말씀이다.
할머니가 올 추석 일주일 지나 돌아가시고 그로부터 이주가 지나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그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를 모시러 아빠와 남해로 갔고, 확실히 전보다 기력이 많이 쇠하신 할아버지를 뵐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94세의 초고령에도 집 뒤에 감나무에서 감을 따 가족들에게 보내줄 준비를 하고 계셨다.
이미 10박스가 넘는 감을 혼자 포장하고 보내셨는데 아쉬워 더 따려고 하시다가 결국 쓰러지신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건강하셨던, 나에게 건치를 물려주신 우리 할아버지가 오늘 아침에 본인의 손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 요양원에 전화를 걸어 입소를 희망하신다며 입소비용을 문의하신 것이다.
할아버지를 집에 모시고 약 한 달쯤 되었다.
할아버지를 챙기는 아빠는 지쳐가고 지친 아빠를 보는 할아버지는 아마 괴로우셨나 보다.
주변 가족들은 할아버지에게 요양원에 가시는 것이 어떻냐고 말을 하고 할아버지는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가족심정을 이해하시고 나날이 힘이 빠지는 아빠를 보며 본인이 죽음을 맞이할 곳이 집이 아니라는 것을 납득을 하신다.
본인이 짐이라고 생각하시며.
할아버지의 정신은 육체상태보다 훨씬 정정하시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시는 모습을 보이시면서 또 오래 살까 봐도 걱정하신다.
가족들은 당연히 오래 사셔야 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살아나갈 현실에 부딪혀 지쳐간다.
나는 죽음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려는 요즘인데 너무나도 씁쓸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저물어가는데
현실은 그 저묾을 석양 바라보듯 아름답게 또는 아리게 바라볼 수만 없게 만든다.
그러면서 보내는 이도 보내질 이도 상처만 남는 것 같다.
아무튼 이런저런 현실들에 할아버지는 결국 본인의 손으로 요양원에 전화를 거셨다.
그리고 그냥 입소를 하고 싶다도 아니고 입소 비용을 문의를 하셨다.
본인을 타인의 손에서 저물어가겠다는 다짐을 하시면서도 또 자식들의 현실인 돈을 걱정하셔야 했다.
가해자 없는 피해자만 있는,
그 피해자들이 각자가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피해자끼리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미안해하고 후회를 하고 자책을 한다.
삶이 뭔지, 책 속에 파묻혀 있다 현실을 바라보면 소설보다도 가혹할 때가 많다.
아무리 배우고 깨우쳐도 가벼워지지 못할 것 같아 슬프다.
나만 없어지면 다 행복할 거라고 하신다.
그 행복은 뭘까.
벌어졌다 끝난 사건이 아닌 끝을 알 수 없는 그저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