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항녀 Nov 25. 2024

늙는다고 죽음이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거의 밤 열두 시가 되어 집에 들어왔다.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화장실 앞에서 얼쩡대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부르셨다.


평소 잠꼬대를 많이 하시는 할아버지라 긴가민가하며 방으로 들어갔는데 할아버지가 불을 좀 켜보라고 하셨다.


불을 켜니 할아버지 눈가에 눈물이 있었다.


어디 아프신가.


열이 나시나, 열 때문에 눈물이 고이셨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해에 있는 할아버지 마티즈 얘기를 하셨다.


할머니 살아계실 동안 할머니 돌보느라 세 달 전까지만 해도 타고 다니셨던 수동 마티즈. (2006년식 조이)


그 마티즈를 팔고자 하신다고 한다.

150만 원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겠냐고.


남해에 할아버지 댁에 갈 때마다 그 오래된 마티즈가 빛이 났었다.

얼마나 애지중지하셨는지 그 마음이 두 눈으로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그리고 이 기력 없는 와중에도 키로 수를 외우고 계셨다.


할아버지 연세가 그렇게 많으신데도 운전을 말리지 못했던 것은 그 시골마을에서 할아버지의 발이 돼주었고, 먼 거리가 아니더라도 할아버지가 운전을 한다는 자체로 할아버지의 힘이 되어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티즈였는데 팔 방법을 나에게 물어보셨다.

인터넷으로 팔 수 없겠냐고.


일단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는 할아버지께 여태 그 생각에 잠에 못 드셨냐고 여쭤봤다.


그랬더니 자다가 갑자기 소중한 것들이 하나둘씩 생각난다고, 그러다 보니 마티즈 생각이 났다고 하셨다.


언제부터 마티즈 생각에 혼자 그 어두운 방에서 울고 계셨을지 생각하며 빠르게 눈가를 닦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 밖에 없어 차 한잔을 타드리고 옆에 앉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소중한 것들 이야기를 들었다.


옷장 속의 8만 원 하는 코트, 시골에서 농사지으실 때 사용하셨던 농기구.


그런 것들을 말씀하시며 계속 눈시울이 붉어지시는 할아버지를 보니 그 소중한 것들이 아깝다는 것 보다도 본인이 맞이할 죽음에 준비를 하는 것에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나이가 들면 죽음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해 왔는데.


언젠가 길을 걷다 할머니들이 85살에 죽어버릴 거라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를 하시는 걸 보고는


‘나이가 들면 죽음이 받아들여지는구나. 내가 죽음이 두려운 건 아직 어려서 그렇겠구나. 자연스럽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할아버지의 눈물을 보니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얼마 전 읽은 김훈 작가님의 책에서는 죽음을 가볍게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이 있어 더욱 자연스러운 줄 알았는데.


떠나보낼, 남은 사람들만 준비가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만도 너무 잔인해 내가 맞이할 몇 차례의 죽음을 겪으며 살아나가는 게 두려웠는데


떠날 사람도 준비가 안되면 어찌해야 하나.


인간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혹하다.


더욱 가슴 아팠던 것은 할아버지의 소중한 것들을 팔고 싶다하시며 본인이 돈이 어디 필요하겠냐며, 그저 아들에게 주고 싶다 말씀하셨다.


그 두려운 죽음 앞에서도 아들에게는 여전히 주고 싶은 게 많은 할아버지다. 아빠의 아빠다.


아프다.


마음이 좀 많이 아프다.


책을 그렇게나 읽어댄 것은 이런 슬픔도 조금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서였는데 내가 하고 있는 것은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며 글로 남기는 게 다다.


아픈 건 여전히 아프다.


책에서 읽은 것처럼 죽음이 그렇게 가벼우면 얼마나 좋을까.


당장 오늘 밤 할아버지한테만은 가벼웠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