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자마자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와다다 돌리다 한 인친 분의 ‘동물성향테스트’ 결과를 보게 되었다. 그분의 결과에는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가 붙어있고 거리감 드는 동물이 결과로 나와있었다.
그 결과를 보면서 ‘좋겠다.. 나는 절대 체계적으로 계획적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아. 아니지, 한번 살다가는 거 바꿔봐?’하는 체념에서 시작해 알 수 없는 도전의식이 생겼다.
그러다 누운 채로 생각을 더 깊게 해 보게 되었다. 요즘의 나는 내가 정말 좋다.
그래서 ‘굳이?’ 하면서 이번 생엔 이렇게 내 모습대로 살리라 마음먹었다.
체계적이고 계획적이지 않은 즉흥적인 내 성향 덕분에 행복할 때가 많다. 퇴근하고 갑자기 광안대교를 탄다던가, 출근길에 잠시 공원에 들러 스트레칭을 하고 간다던가. 안 가보던 길을 걷는다던가.
좌충우돌 얼렁뚱땅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기분이다. 물론, 아주 계획적인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스터디 플래너에 빼곡히 계획을 작성하고 그 계획을 하나하나 지워가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종종 따라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렇게는 안되더라.
무계획의 즉흥적인 나를 원래라면 좋아하지 않았을 텐데, (또 진부한 소리?) 내 속의 진정한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그 나를 받아들이니 행복하다는 걸 깨닫고 내 특성을 이용해 행복을 누리고 있지 않나 싶다.
(머릿속에서 계속 ‘짱구는 못 말려’ 대표곡이 들려온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에 싫어하던 내 모습들을 어떤 식으로 사랑하게 되었는지 나열해보려고 한다.
1. 즉흥성
앞서 말한 것처럼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하면서 일상을 조금씩 뒤틀며 살고 있다. ‘어떤 하루를 보내야지’보다도 시간과 공간과 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내가 행복하겠다 싶은 걸 실천에 옮겨버린다. ‘갑자기’. 그래서 주변에서 ‘갑자기?’ 하는 말들을 하곤 한다. 그럼 나는 웃으면서 ‘응, 갑자기 ㅋㅋㅋㅋ’라고 하고 스스로 조금 도라이가 된 것 같은 느낌에 뿌듯해한다.
2. 물아일체 공감능력
탁월한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과 얘기하다 보면 울컥하거나 너무 마음이 아파 힘들 때가 있었다. 아니면 내가 하는 반응이 너무 ‘오버’스럽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가식’이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또 주로 공감을 하다 보니 사람을 만나면 쉽게 지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공감능력이 있다 보니 쉽게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 같다. 억지로라도 내가 함께 감정을 느끼니 마음의 문을 안 열어 줄 수 없는 게 아닐까.
이것은 사람에게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동물과 식물에게도 가능하다. 청새치의 일생에 대한 안타까움이라던지, 실수로 죽인 벌레에 대한 슬픔이라던지 그런 생각을 지인들에게 말하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내가 동물권리운동가나 비건은 아니라서 모순이 있을 때가 종종 있지만, 그리고 습관적으로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못 보던 감정들을 생각해 보면서 자연이 더 가까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한 사람으로서 글감이 풍부해지는 기분도 든다.
3. 이래도 좋아, 저래도 좋아
결정장애나 뭐 우유부단함으로 불리던 나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데 어떡하지?’는 ‘나는 못 먹는 게 없다!’와 ‘나는 못 하는 게 없다!’로 바뀌었다. 일상에서 주로 결정장애를 느끼게 되는 순간은 밥을 먹으러 갈 땐데 나는 정말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서 결정을 못한다. 그럼 상대방이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를 때가 많은데 정말 그래도 좋아서 따라간다. 만약 내가 고집 있게 타인과 약속에서 ‘오늘 내가 먹기로 마음먹은 돼지국밥을 먹고 말겠어.’를 주장한다면, 혹시 그러다가 그 마음이 꺾인다면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지만 그러지 않으니 너도 좋고 나도 좋고. 결정을 떠넘기는 것 같아 미안할 때가 있지만 그건 모르겠다. 물론 나도 가끔은 꼭 먹어줘야 하는 게 있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혼자 가서 잘 먹기도 하고 또 의사표현을 하기도 하고.
과거에 나는 정말 ‘나 자신 혐오자’였다.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한다거나 감정이 너무 요동친다거나 생각이 너무 많다거나 하는 순간들에 나는 왜 이리 나약한 존재냐며 나를 탓했다. 하지만 그건 나약한 게 아니고 그저 나였다.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고 활용하기 시작하니 행복해졌달까. 그래서 어느 정도 이뤄낸 사람들이 아웅다웅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그저 느끼고 바라보면서 살면 삶이 더 아름다워질 텐데.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나의 싫은 모습을 바꾸려 하지 않고 나대로 살면서 좋은 방향으로 데리고 가려고 한다. (이건 내가 31년간 무탈히 잘 컸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인가) 내가 겁을 내고 못 하는 게 있다면 그게 나고, 그렇기 때문에 여태 무사히 살아왔다고 칭찬해 주고. 갑자기 무언가를 하고 싶어 졌다면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에 뿌듯해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행동하고.
이렇게 쓰면 혹시나 모든 것에 초연하게, 담담하게, 통달한 사람인 듯 보일까 싶지만 일상, 살아가는 건 나에게 여전히 어렵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를 미워하지 않느니 큰 장애물 하나는 없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또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머리는 또 어떻게 만져야 좋을지, 이건 어쩌지 저건 어쩌지 고민고민 하지 마
아, 요즘 행복 전도사가 된 것 같은데..
이것도 뭐 어때.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다시 내가 쓴 글을 읽다보니 오류가 있는데 나도 내 문제를 여태까지 커오면서 이래저래 수정해왔다. 그러다보니 지금 서른 한살의 내 모습에는 이제 만족하고 살려는 것이다. 결코, 문제성 행동을 악화시키지는 말자. 내 글의 의도를 곡해시키지 말아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