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은인
나에게는 은인이 몇 분 계신다. 그분들을 가끔가다 떠올리면 무한한 감사의 마음만 떠오른다. 그리고 무한히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는다. 사람을 생각하면서 무한히 좋은 것만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그럴 수 있는 사람, 대상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이 유해한 세상에 어떤 사람을 생각하기만 해도 행복과 건강, 온갖 좋은 것들을 바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진다.
오랜만에 그분들 중 한 분이 떠올랐고 나는 당장에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도움이 필요했던 그 시절 당신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렇게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정말 감사하다고. 그랬더니 그 은인께서도 내가 잘 지낸다고 말을 해주어 감사하다고 하셨다.
마음이 뜨거워졌다. 아무래도 힘들 때 이 분을 떠올리면 다시 힘이 날듯하다.
2. 만성피로
오랜만에 다시 일터로 나온 나는 오랜만에 다시 만성피로를 느끼고 있다. 그리 격무를 하는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만성피로감을 느끼게 된 것인가.. 이것은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먹은 나이 탓인가 아니면 늘어난 몸무게 탓인가. 아니면 여기 일터의 터가 문제일까. 사실 터가 제일 문제일 것 같다. 내가 일하는 곳은 모두가 음지라고 말을 한다. 뭐랄까. 꽤 스산하기도 하고 흔히 느낄 수 없는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만성피로. 정말 딱히 피곤할 일이 없는데 왜 피곤한 것인가. 피로라는 것이 ‘직장인’에게 패시브 스킬(?) 같은 걸까. 같이 일하는 동료조차도 ‘너무 피곤해 보여요..’ 라고 하는데.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회사에서 피곤해 보이는 건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3.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떤 책을 읽다가 문득 저 문장이 떠올랐다. 그리고 꽂혀서는 약 일주일 동안 놓지 못하고 있다.
시끌벅적하게 뛰어노는 해맑은 어린아이들을 바라보고 서있는 후련해 보이는 뒷모습. 그리고 그 사람 주위로 내레이션처럼 울려 퍼질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말.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의미인데..
저 문장을 생각하는데 과연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는 게 좋은 걸까 싶었다. 내 기준 지금 시점 에서 내가 복직을 하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기지개를 켜는 순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전지적 작가가 내 뒤에다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라는 문구를 넣는다면 나는 욕을 할 것 같다.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데!! 얼마나 생각이 바뀌고 책을 많이 읽었는데,
뭐?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 누구 마음대로! 난 절대 제자리로 못 돌아가!!
라고 화를 낼 것 같다.
4. 저자세
요즘 상담을 계속 받으러 다니고 있다. 그러다 내 일상생활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저자세’라는 말이 나왔다. 그 단어는 익숙한 단어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비굴하게, 또는 저자세로 반응을 하지 말라는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하지만 어쩌냐. 나는 이미 그게 몸에 배어 있는 걸. 그러면서 내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더 나눠봤다. 여태 내가 살아오면서 저자세로 먼저 고마워한다던가 사과를 한다던가 하는 행동이 나에게 큰 문제를 가져다준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는 그런 내 모습으로 쉽게 타인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도움도 쉽게 받아왔다고 생각했다. 결론은 나오지는 않았는데 나는 그 저자세의 내 모습을 싫어하고 후회하기는 하지만 손해를 보지 않았으니 그걸 유지한다는 것.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어차피 저자세를 하든 뭘 하든 내 주변에 나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을 것이고 내 낮음에 맞추어 함께 해줄 것이기 때문에 내 행동을 크게 바꾸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그래도 내가 서른이 넘었고 사회생활은 5년이 넘게 했는데 어때. 뭐. 여태 잘 살아있잖아.
결론적으로 인생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