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나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해진 것이 문득 느껴진다.
혼자 아무런 소리도 듣지 않고 원하는 자세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원하는 걸 하며 고요히 있을 수 있는 곳.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온전하게 혼자 있어야 충전될 것 같은 한 부분이 분명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 떠오른다. 사실 그걸 읽을 때 만해도 별 다른 감흥은 없었다.
연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필요한 것.
(나는 소설작가는 아니지만 필요하다. 이것저것 뭔가 많이 한다.)
요즘 내가 오롯이 혼자 쉬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쓸 공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는 괜히 버지니아 울프가 얄미워졌다. 막연함을 구체화된 느낌?
그래, 당신이 왜 그렇게 말한 줄 알겠어요.
하지만 저는 능력이 부족해서 저만의 방을 갖지 못했네요. 오, 불쌍한 나 자신.
그렇게 혼자만의 방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갑갑해하다 작년 이맘때였던가.
아니, 겨울이었네 그때 찾았던 1인 서재 ‘열람실’을 다시 찾았다.
당장 어제 오고 싶었지만 짧고 아쉽게 즐길 것 같아 오늘로 예약을 해두었고,
어젯밤 내내 얼른 오늘 오후 2시가 되길 바랐다.
오는 길, 얼른 열람실에 앉아 나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갖고 싶어 택시를 탈까 고민을 했다.
하지만 ‘자기만의 방’을 빨리 갖기 위해서는 그 돈도 아껴야 한다는 걸 깨닫고 버스를 타고 왔다.
들어서자마자 맡아봤던 열람실의 향, 그리고 친절하신 사장님. 재방문이라고 커피는 서비스.
내가 주문한 커피는 ‘므쵸베리’. 예전에 왔을 때도 커피가 정말 맛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느껴진다. 내가 커피를 더 잘 알았더라면 이 깊은 맛도 글로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아무튼 미소가 나는 맛이다.
참 신기하다. 한두 평 되려나. 평수를 모르는 나라서 틀려도 모르겠다. 이 작은 공간에 편안한 소파와 나무로 된 가구들이 그저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나도 그저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는데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다니.
너무 좋으면 항상 찾아오는 걱정. ‘이곳이 사라지면 어쩌지?’ 사라지려 할 때 사장님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지기 위해 더 자주 와야겠다.
훗날 내 방이 생겨서 이런 느낌으로 꾸민다면 이런 편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의문이다. 여행과 같이 집을 떠나왔기에 더 행복을 느끼게 되는 걸까? 낯섦지만 편안함이 공존하는 그 묘한 아이러니에 오는 행복? 집에 이런 공간을 마련하면 완전한 익숙함에 행복이 줄어들까? 하는 괜한 걱정까지도 한다.
그런 생각은 지우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련다. 맨발이 깔려있는 카펫에 닿을 때도 기분이 좋다. 소파에서 이리저리 자세를 고치려 할 때 푹신하게 잡아주는 쿠션감이 좋다. 방 한켠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는 시계추의 성실함이 좋다. 소파 옆 벽에 붙어 있는 이전 방문자들의 이야기들이 좋다. 몇몇 문장은 와닿는다. 아픔도 행복도. 아픈 글을 붙이고 간 사람은 부디 아픔도 두고 갔기를 소망도 해본다.
어쨌든 지금 나는 너무 행복하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