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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freeze 그림책 Aug 12. 2022

이방인의 그림책_약속

가장 편한 길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길로

아이들의 인권을 주제로 한 책모임에서 야누스 코르차크의 '아이들'을 함께 읽었습니다. 야누스 코르차크는 평생을 아동의 인권을 위해 살아오면서 유엔 아동권리선언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사람이에요. 아이들을 향한 그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죽음도 막지 못했는데요. 2차 세계대전 중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나치의 제안을 거절하고 고아원의 아이들과 함께 죽음의 수용소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고 합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아이들을 사랑했던 그의 삶은 우리에게 묵직한 감동을 전해 줍니다. 아이들을 포기하지 말라는 그의 절박한 호소는 한 편의 시처럼 가슴에 퍼져나갑니다. 그의 생각과 판단이 얼마나 현실에 부합되는지 따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에게는 순수하고 거룩했던 그의 기도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나쁜 행동?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나쁜 행동을 하는 아이는
그것을 무거운 짐처럼 느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그러는 겁니다.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나름대로 달라져 보겠다고 애쓰다가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포기하고 말겠지요


촉법소년들의 범죄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주위를 보면 소년법 폐지에 찬성하는 분위기가 더 우세한 듯 보입니다. 점점 잔인해져 가는 아이들의 범죄에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건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분법적이고 처벌적인 방식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게 사실입니다. 모든 책임을 촉법소년이나 그의 부모에게 돌리는 이들의 무자비함이 섬뜩합니다. 어른으로서 우리의 책임은 과연 없었을까요.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어른이 되었을까요.




그림책 '약속'은 더럽고 가난하고 흉측한 도시에 살고 있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죽은 나무들처럼 말라비틀어진 심장을 지닌 소녀는 소매치기를 하며 삶을 이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한 노부인의 가방을 훔치려다가 노부인과 어떤 약속을 하게 됩니다. 노부인은 소녀에게 가방을 주며 그 안에 든 걸 심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소녀는 알겠다며 황급히 가방을 들고 도망칩니다.


가방에 든 건 소녀의 기대와 달리 도토리뿐이었습니다. 도토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소녀는 약속을 깨닫게 되고 도토리 숲 하나가 품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음식과 돈에 대한 생각 대신 행운과 풍요로움이 깃든 밤을 보냅니다. 아침이 되었고 소녀는 약속대로 도토리를 심기 시작합니다. 푸른 나무들이 자라나면서 더럽고 가난하고 흉측했던 마을에 마침내 축복의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도토리를 가지고 안타깝고 슬픈 또 다른 도시로 향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 그 이상을 배우고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겠죠. 야누스 코르차크의 말처럼 아이가 나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달라져 보려 애써도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가 반복되면 결국엔 포기하고 말겠죠.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뭘까요. 아이들은 어디서 희망을 찾을까요.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약속을 건넬 수 있을까요.



가장 편한 길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길로 이끌어주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 앞에 고개를 숙이고 제 열렬한
소망을 이루어주시길 요구합니다.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지만 집요한 의지를 담아 간곡히
탄원합니다. 당당히 서서 구름 너머로 열망의
눈길을 던집니다.
이 부탁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당당히 요구합니다. 아이들과 그들의 노력을, 
그들의 분투를 축복해주십시오. 삶의 길목에서
그들을 이끌어주십시오. 가장 편한 길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길로 이끌어주십시오.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내가 가진 것 중 유일하게
값진 것인 내 슬픔뿐입니다. 내 슬픔과 노력을 
당신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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