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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freeze 그림책 Sep 01. 2022

너의 사춘기 나의 그림책 13_이해하기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지난 1학기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큰 아이는 시험이 하루 더 남아있는 상황에서 종일 컴퓨터 게임을 했고 참다못한 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격앙된 감정으로 비난의 말을 쏟아내던 내게 아이는 지지 않고 말했다.


"초등학생이랑 얘기하는 것 같아."


잘못은 지가 해놓고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대놓고 나를 무시하다니. 감정적인 상태에서 논리적으로 얘기하지 못했다는 걸 인정하다 해도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었다.


"내가 초등학생 이면 넌 사람이 아니다. 상식과 양심이 있다면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거야."


나는 지지 않으려 아이에게 몹쓸 말을 퍼부었다. 돌이키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그렇게 서로에게 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고 우리는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분단과 냉전의 나날을 보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속 아이는 아침이면 자신을 둘러싼 낱말들의 소리에 깨어나지만 그 어떤 것도 말할 수가 없다. 목구멍에 달라붙는 낱말들 속에서 아이는 돌멩이처럼 조용하다. 아이는 말을 할 일이 없기를 바라며 학교에 가지만 이내 그 기대는 무너진다. 자신을 향한 차가운 시선들 속에서 아이는 소리 없이 움츠러든 채 슬픔으로 번져간다.


내 안의 말들이 구름처럼 흩어지며 흘러가 나를 말 안에 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말을 놓치고 삼키다 보니 점점 나 자신이 모호해져 가면서 세상 바깥으로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말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참 많이도 했었다.


지금의 나는 어떨까. 그림책 속의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시선들 중 하나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시선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하진 않았을까.



아이를 데리러 온 아빠는 아이의 표정을 살핀다. 발표를 잘하지 못해 힘든 마음을 알아 차린 아빠는 아이를 데리고 조용한 강가로 간다. 아이는 자신을 바라보던 그 많은 눈, 자신을 비웃던 그 많은 입을 떠올리며 슬퍼한다. 아빠는 아이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어떤 훈계와 비난도 하지 않는다. 그저 아이의 어깨를 감싸며 한 마디의 말을 건넨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아이는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며 굽이치다가 부딪히는 강물을 본다. 그리고 강물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아이는 알게 되었다. 자신은 강물처럼 말한다는 걸. 아이는 아빠의 말에 기대어 힘겨운 시간들을 견디며 점점 자신에 대해 당당해져 간다.


아빠가 아이를 해석하자 아이는 스스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다그치지 않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내며 위로하는 아빠를 보며 나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가 다른 시각으로 자신을 보게 만든 아빠의 기술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경험과 연륜일까 아니면 타고난 성품에서 피어난 사랑 때문일까. 아빠가 그 무엇보다 아이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걸 중요시했다는 게 내가 가장 따끔한 지점이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여름휴가를 보냈다. 익숙하고 지루한 집을 벗어나 낯선 각도에서 우리의 삶을 보고 싶었다. 지쳐있던 일상을 접어두고 서로의 의미를 일깨워 줄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 필요했다. 다른 공기와 풍경 속에서 우리의 싱싱함을 회복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을 깊이 받아들이고 머무르면서 함께 교감하고 싶었다.


나의 기대와 달리 큰 아이는 자기만의 길을 갔다. 숙소에 혼자 남아있기도 했고 마지못해 따라간다는 티를 내며 집에 갈 시간만을 기다렸다.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건 숙소였다는 성의 없는 대답이 못내 서운했다. 겉도는 아이를 향해 자연스레 못마땅한 눈빛이 지어졌다. 시시콜콜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가득하게 차 올랐다.


집에 도착하자 갑자기 아이에게 생기가 돌았다. 알아서 짐 정리를 도와주고 주어진 심부름에 기꺼이 응했다. 아이는 즐거워 보였다. 여름휴가가 아이에게 그다지 재밌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나와 신랑은 그저 허탈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아이의 자유시간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와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려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내 기준과 생각을 내려놓아야만 그 자리에 아이의 마음을 담을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쉽지 않겠지만 아이가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그 마음을 알아주고 안아주는 엄마이고 싶다. 아이가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내가 먼저 아이를 새롭게 정의하고 해석해주고 싶다. 앞서 나가지 않고 나란히 곁에 선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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