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작은 새
아이의 사춘기를 겪으며 가장 괴로운 것 중 하나는 사춘기에는 D-DAY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언제쯤 돌아올지, 아니 돌아오기는 할지 늘 초조한 상태로 바라보며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이미 사춘기를 경험한 선배맘들에게 조언을 구해보지만 그들의 대답은 저마다 다르다. 부모들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점점 지쳐가고 기약 없는 기다림은 잔인하고 모질다. 이러다가는 자존심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기대하지 않는 게 속 편한 거지 싶다가도 내 아이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를 재촉하고 억지로 끌어당겨 보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튕겨져 나간다. 마치 막다른 골목에 선 기분이다.
'사자와 작은 새'는 간결한 글과 적절한 여백 그리고 차분한 그림이 잘 어우러져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잘 담아낸 그림책이다. 어느 날 상처 입은 새를 발견한 사자는 그 작은 새를 치료해주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다른 새들이 모두 떠난 뒤였기에 작은 새는 사자와 함께 모든 일상을 함께 하며 겨울을 보낸다. 둘은 그렇게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간다.
작은 새를 보살펴주는 사자에게서 엄마로서의 내 모습을 본다. 혹여 아이가 상처 입을까 조심스럽게 품고 다녔던 때가 떠오른다. 엄마인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의지하던 아이를 지키고 보호하는 게 일상이었던 시절이었다. 서로 가까운 만큼 투명하고 포근했던.
봄이 되어 새들이 돌아왔다. 사자는 작은 새가 떠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홀로 남겨진 사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쓸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자는 평범한 일상을 지속해 가고 어느새 계절은 다시 가을이 되었다. 사자는 하늘을 보며 중얼거린다. 넌 안 오니?
아이는 사춘기라는 날개를 달고서 멀리 날아가 버렸다. 마치 자신이 꼭 가야 할 곳이 있는 것처럼. 아이가 독립하는 과정이라지만 그 변화가 버거운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귀여운 도토리 같던 아이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나는 닫힌 아이의 방문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넌 언제 다시 오니?
그림책 <사자와 작은 새>가 그려내는 계절의 변화는 기다림은 나 혼자 만의 외로운 시간이 아니라 온 세상이 함께 하는 우주적 사건임을 보여 준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의 기다림에 함께 동참하며 견뎌내고 있는 자연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책 중간에 자리한 빈 종이는 기다림의 본질로 우리를 이끈다. 제대로 기다리기 위해서는 빈 공간을 그대로 둔 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비어있지만 충만한 기다림의 시간에 머물러 있어 보라고.
새를 기다리며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사자의 모습을 보며 기다림과 일상 모두가 가능한 삶을 그려본다. 기다림에 파묻혀 일상을 놓치지 않고, 일상에 쫓겨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 진다. 올지 안 올진 나의 몫이 아님을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