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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freeze 그림책 Aug 25. 2022

너의 사춘기 나의 그림책 11_거리두기

너는 나의 모든 계절이야


OO이 여자 친구 있지?

지인으로부터 뜬금없는 질문을 받았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방에서 잘 씻지도 않는 애가 여자 친구라니. 나는 그럴 일은 없다고 확신에 찬 대답을 했다. 지인은 분명 어떤 여자애와 손잡고 가는 큰 아이를 봤다고 했다. 그러자 문득 얼마 전 둘째가 형이 여자 친구랑 손잡고 가는 걸 봤다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물론 그 당시에도 난 거짓말하지 말라며 둘째의 말을 웃어넘겼었다.


큰 아이에게 전해 들은 유일한 여자 사람 친구가 떠올랐다. 시험기간이면 필기노트와 프린트를 빌려주던 여자애였다. 큰 아이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밴드부를 같이 하던 친구 사이였고 현재는 전교회장을 하고 있는 오지랖이 넓은 아이로만 알고 있었다. 그 아이로 단정 지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의심되는 상황들이 여러 번 있었다. 정작 엄마인 내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났다. 그리고 썸인지 연애인지 모를 그 이야기가 미친 듯이 궁금해졌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아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목구멍까지 가득 찬 말들을 내뱉고 싶었다. 시시콜콜 아이의 세계를 묻고 싶었다.





'너는 나의 모든 계절이야'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엄마에게 아이는 웃음이고 빛이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어린 시절의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그대로 흡수하던 존재였다. 엄마라는 우주 안에서 아이는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아이는 자신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았고 자신이 좋았다. 둘은 마주 보았고 서로의 손을 마주 잡았다. 세상에서 가장 친밀하고 투명한 관계였다.


휴대폰에  아이가 즐겨 부르던 뽀로로 노래가 녹음되어 있다. 나와 나란히 방구석을 뒹굴며 부르기도 했고   골목에서  아빠를 기다리며 부른 적도 있었다.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웃음이 가득했다. 아이의 노랫소리는 마치 새가 지저귀듯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예뻤던 아이에게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의 사랑을 주고 싶었다. 서툴고 모자란 순간이 많았지만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다. 내 어둠은 체에 거르고 깨끗하고 고운 빛만 주고 싶었다. 



둘의 어긋남이 시작된다. 엄마의 기대가 부담스러워진 아이는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자책 가운데 막연히 다른 존재가 되기를 꿈꾼다. 엄마는 자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아이로 인해 두려움을 느낀다. 점점 크게 자라나는 아이의 가시로 인해 눈물을 흘린다. 결국 아이는 '엄마의 빛을 찾아요'라는 말을 남긴 채 집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 엄마의 마음은 캄캄한 밤이 되어간다. 


아이의 분리와 독립은 정상적인 발달과정이라는 것을 안다. 방해받고 싶지 않은 자기만의 세계가 생겨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많이 아프다는 게 문제다. 멀어지는 아이가 비정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 가고 있는 걸까. 아이는 자신의 불안한 감정과 혼란스러운 상태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우리는 각자의 빛을 찾을 수 있을까. 




흔히 사춘기 자녀와 잘 지내는 방법으로 아이를 하숙생으로 여기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밥과 청소와 빨래만 해주고 나머지는 그냥 모른 척하라는 것이다. 물론 하숙비는 못 받는 억울한 입장이지만 최악의 상황만은 막으라는 조언이다. 다행히 나는 점점 그렇게 되어 가고 있고 집은 나름 평화를 되찾은 듯하다. 


아이의 썸 혹은 연애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은 눈치다. 질문을 삼켜가며 인내심을 발휘한 덕분에 나는 아이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는 아마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을 잘 감추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안해 아들. 엄마는 이미 알고 있어. ^_^


묘한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아이와의 거리에 익숙해져 간다. 결국엔 추억과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남겨질 관계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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