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을 거야
중3 아이의 방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아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건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당연히 게임이다. 아이의 하루 일과는 오후 12시쯤 시작된다. 일어나서 밥을 먹고 바로 컴퓨터 방으로 직행하는데 아예 동선을 최소화해 밥을 들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면 거실로 나와 밥을 먹고 한 시간 남짓 학원을 다녀온다. 집에 오면 또 바로 컴퓨터 방으로 자취를 감추고서는 새벽 1시쯤 나와 자는 방으로 들어가 1-2시간 정도 휴대폰을 하고서 잠이 든다.
이제 고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무기력하게 늘어진 하루를 보내고 있는 아이를 보면 조바심이 생긴다. 공부를 떠나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의 취미생활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아이는 좀처럼 집 밖을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의 인생 그리고 내 인생이 심히 걱정된다.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어도 괜찮은 걸까.
'괜찮을 거야'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 도시를 헤매는 한 아이의 간절함을 그린 그림책이다. 근심 가득한 표정의 아이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기 위해 버스를 타고 도시로 향한다. 사람들로 북적이며 온갖 소음이 가득한 도시를 가로지르며 아이는 고양이의 무사함을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다.
거대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나도 아이처럼 겁이 날 때가 있다. 상처받고 쫓겨날 것 같은 생각에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쉽지 않다. 앞으로 다가올 불행을 두려워하며 아무도 믿지 못한다. 어른인 나도 아직 무서운 게 많은 세상인데 하물며 아이가 마주하는 세상은 얼마나 더 낯설고 버거울까. 나도 모르게 아이의 작음을 자꾸만 놓치게 된다.
아이는 마주치는 풍경마다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가는 곳마다 마치 고양이와 함께 있는 것처럼 말을 건넨다. 어느 길이 위험하고 어디가 쉬기에 좋은지 알려준다. 생선을 얻어먹을 수 있는 가게도 알려주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장소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공원의 의자를 알려준다. 아이는 고양이를 알았기에 세심하게 고양이의 걸음을 인도한다. 안다는 건 사랑한다는 말과 같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말들을 건네고 있는지 생각한다. 격려와 응원보다는 불신의 눈초리로 지적하고 비난할 때가 많았다. 만만한 세상이 아니라며 실패를 단정 지었다. 나는 아이를 얼마나 잘 알아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아이의 무사함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왜 믿음으로 이어지기 어려울까. 지금 아이에게는 무엇보다 자신을 안심시켜주는 어른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고양이를 찾지 못한 채 마지막 전단지를 붙이고는 집으로 돌아온다. 얼마나 고되고 무서웠을까. 엄마는 아이를 토닥이고 아이는 엄마 품에 와락 안긴다. 아이는 속삭인다. 나는 너를 알아, 너는 괜찮을 거야. 그 간절함이 쌓인 눈 틈에 작은 흔적이 되어 남아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올 것 같다. 사랑하는 존재의 안녕을 바라는 그 마음이 너무 뜨거워 쌓인 눈이 다 녹아버릴 것 같다.
'괜찮을 거야.'
나는 그토록 듣기 원했으면서 아이에게는 제대로 말해 준 적이 없다. 아이를 안심시키기보다 오히려 내 불안을 떠넘기며 아이의 불안을 자극했다. 부정적 시선으로 아이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위축시켰다. 그래도 괜찮다. 나에겐 아직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엄마로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으니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기에 후회 대신 기대를 품어보고 싶다. 엄마가 믿어주는 만큼 아이도 자신을 믿으며 천천히 자기의 길을 찾아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