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눈치(중압감)"라는 녀석을 보면서 살아간다. 사람들이 눈치를 본다는 건 다른 사람을 어느 정도 크든, 작든 의식을 한다. 타인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인정을 받지 못함의 두려움 때문에 눈치(중압감)를 느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어떻게든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고 살 수밖에 없다.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영·유아기 때는 가족들의 영향을 받고, 그 뒤 성장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다. 우리 몸속의 DNA에는 태생적으로 관심을 받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망을 생성, 유지, 강화, 확장해 나아가고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 유튜브, 트위터 등 많은 플랫폼에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sns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분명 어딘가엔 소속되어 있고, 타의든 자의든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중압감)에 많은 영향을 받지 않는 것뿐이지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
성장하는 환경에 의해 눈치를 보게 된다. 타인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확실히 우리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나는 성장 과정에서 가족들의 눈치를 많이 보며 살았다. 착해야 되고, 성실해야 되고,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야 되고, 엇나가지 않아야 되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알아야 되고, 공부도 잘해야 되고, 부모님 말을 잘 듣는 아이가 되어야 했다. 정말이지 힘들었다. 가족들은 칭찬보다는 누구누구와... 비교를 가끔 하였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기싸움(시월드) 한복판에 있었다. 기싸움을 하는 날이면 아버지는 할머니 편만 들어주셨고, 그 뒤 감당은 나의 차지였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골을 풀어 보려고 무단히 노력해 보았지만 골은 더 깊어져만 갔고 눈치만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권위적인 면이 강하신 분이다. 본인 위주로 되지 않으면 고함을 지르시고 화를 내시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치를 보게 되었다. 속된 말로 가두리 양식장에서 생활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지내다 보니 나의 가치관이 무엇인지도 뚜렷하지가 않았다.
스스로가 독립적이지 못했고, 자존감이 낮았고, 결정을 자신 있게 못 내리다 보니 자연스레 많은 눈치를 봤다. 이런 모습들을 바꾸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운동을 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의식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하니 조금의 성과는 있었다. 지금까지도 변화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내적 평화를 얻는 비결은 자기 내면의 핵심적인 가치관, 즉 무엇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지 이해하고 그 가치관을 우리 삶에 반영하는 것이다. 어떤 가치관이 진짜가 되려면 다른 사람이 부과한 의무나 기대에 따르는 게 아닌 본인이 자유롭게 선택해야 하고, 내면의 어떤 지표와 일치해야 된다.
자신의 가치관은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영향받기보단,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했을 때 더 마음이 가볍고 많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남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보단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해 나아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타인에 대한 신경을 쓰기보단 스스로에 대한 부족한 부분을 찾아 발전시켜 나간다면 성장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