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애매한 상황이 저번 주에 있었다. 핸드폰에서 카톡 알림음이 들렸다. 카톡 내용이 궁금해 확인했다.모바일 초대장이 카톡으로 왔다.
초대장 내용은 7월 11일에대학 동기가"딸의 돌잔치"에 초대한다는 카톡이었다.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동기도 코로나 19로 인해 돌잔치를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동기는 첫 아이 돌잔치라 신경도 쓰였고, 고마운 분들에게 식사 대접도 해야 될 거 같아 진행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난 아직 결혼을 못해 아기가 없다. 이 부분에서 공감이 안되었다. 당연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의 마음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코로나 19"만 아니었으면 찝찝한 생각 없이 바로 그날 보자라고 말하고 축하해줬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생각하다 조금 늦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했고 상황보고 가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동기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ㅇㅇㅇ동기 딸 돌잔치'라고 하는데 갈 거냐고 물어보았다. 다들 일이 있어 못 갈 거 같다고 말했지만 '코로나 19' 여파도 있었다. 한 동기가 나한테도 물었고, 고민을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돌잔치 전 날까지 고민했다.
결론은 7월 11일 오늘 가기로 마음먹고 갔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뚫고 체육학과 동기 딸의 돌잔치에 갔다.
건물을 들어서자마자 입구에 있는 열감지 카메라로 열 체크를 하고, 손 소독을 한 다음 뷔페가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가는 순간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다른 분들의 돌잔치도 함께 하다 보니 예상보다 사람들이 꽤 있었다.
들어가기 전 이름, 전화번호를 기입하고 들어갔다. 혹시 모를 확진자가 발생하면 역학조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적었다. 뷔페 안으로 들어서니 음식을 접시에 담는 사람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당연히 써야 되지만 그 상황이 신기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 생활 전반이 바뀐 듯하다.
나는 돌잔치하는 공간으로 들어가 "사회적 거리"를 두면서 앉았다. 대부분 그렇게 앉지 못했다. 함께 온 사람들과 붙어서 식사를 했다. 내가 앉은 테이블은 따로따로 온 사람들이라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했다. 그래도 식사를 할 때는 마스크를 벗고 먹어야 했기 때문에 찝찝함은 있었다.
어쩌겠는가? 좋은 자리에 축하하러 갔기 때문에 그냥 먹었다. 밖에 음식을 가지러 갈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가야 하는 상황이 좀 불편했지만 살기 위해 꼭 쓰고 나갔다. 음식을 배불리 먹었을 때쯤 돌잔치 행사가 시작되었다.
내가 다닌 돌잔치만 해도 "수십 번"은 되었지만, '코로나 19'라고 달라진 건 딱히 없었다. 아... 딱 하나가 달라졌다. 다 같이 '생일 축하곡'을 부르고 나서 메인 MC가 돌잔치 주인공을 위해 축하 댄스를 선보인다. "그 축하 댄스가 없어졌다."음식을 챙기러 가다 보니 마찬가지로 축하 댄스는 하지 않았다. 그것 말고는 여느 돌잔치 행사와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 돌잡이 두 번째 호명에서 받은 '아차상' >
돌잔치를 수십 번을 다녀봤지만 단 한 번도 돌잔치의 하이라이트인 돌잡이 선물을 받은 적이 없었다. 오늘은 예외였다. "첫 번째 호명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선물을 받았다."
'코로나 19'로 불안했지만 그 순간은 그냥 기뻤다. 그것도 내 생일 요일로 걸리니 기쁨은 두배가 되었다. "17번"으로 걸렸다. 난 숫자 "7"을 좋아한다.
기쁨이 두배가 아니고 세배가 된다. 선물을 받고, 번호가 생일 요일이고, 행운에 숫자인 "7"로 받아 세배의 기쁨을 얻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혹시 몰라 로또 판매점에서 "로또"를 싸서 집에 갔다.
'코로나 19'로 인해 찝찝한 마음이 선물에 당첨됨으로써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참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기분 좋은 하루가 되었다. 동기에게 다시 한번 더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난 오늘 "코로나 19 예방 수칙"을 제대로 시행하면서 모임에 참석했다. 그래도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2주간 내 몸을 잘 관찰하고, 당분간 외출은 자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