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직장문화.
수평적이어야 오래 흐른다.
오늘날 비즈니스 환경은 당장 내일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급변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조직문화는 여전히 굴뚝 산업시대에 만들어진 조직체계와 통제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리더들은 더 바빠지는 업무에 묻혀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고, 현장의 직원들은 여전히 권한 없이 지시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방식,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보편적 방식으로 4차 산업혁명의 급변하는 시장경제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 다시 말해 4차 산업혁명에 맞는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기업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위기감 속에 많은 기업들이 한 가지 생각만을 고집하고, 문제에 대한 원인 중심의 수직적 조직문화에 한계를 느끼면서, 전혀 다른 수평적 조직문화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의사 결정 단계 줄이기, 직급에 상관없이 **님으로 부르기, 영어 이름을 부르기가 등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기업들이 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다. 그러나 수평적 조직 문화로 정착시킨 조직은 많지 않다. 그럼 왜, 수평적 문화로 정착시키지 못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문화’와 ‘구조’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수평적’이라고 말하면 조직의 계층이 없거나 계층구조가 단순화된 것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의 노력이 계층을 허무는 일에만 집중한 것이다. 그러나 조직 계층이 몇 단계 없는 경우에도 충분히 수직적 조직문화 일 수 있다. 조직 구조를 2~3단계로 줄임으로써 보기에는 수평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리더의 일하는 스타일 즉 ‘알 것 없고, 지시 데로만 해’라고 한다면 조직 문화는 여전히 수직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수직적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더라도 충분히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가질 수 있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을 보면 조직도 자체는 일반적인 기업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니 수평적이라는 말만 듣고 위와 아래가 없는 조직의 단계로만 제한해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수평적 조직 문화란, 의사 결정 과정에 직급에 상관없이 구성원들의 의견이 충분히 논의되고 나와 다른 의견도 묵살되지 않고 존중되는 문화 즉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 구성원들이 충분히 참여할 수 있고,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있고, 반대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는 문화를 말한다. 그렇다고 팀원들 모두가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도, 모두가 합의해서 내리는 것도 아니다. 의사결정 과정에 모든 사람에게 발언권을 부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때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 등 단점도 있다. 업무 수행보다는 의견을 조율하고 회의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의에 기초한 방식은 더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존중하려는 바람에서 만들어지지만 조직의 민첩성을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과 같이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결정은 의사결정자가 내리고 책임도 지는 것이다. 결국 수평적 조직 문화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합의 아니라 과정의 자율성에 있다. 그렇다 보니 많은 기업들이 자율적 조직 문화를 만들려고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하고, 복장을 자유롭게 하고, 자율 좌석 제를 도입하는 등 노력을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구성원 많지 않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이는 것을 바꾼다고 해서 자율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도로 교통이 원활하려면 모든 차들이 교통질서를 잘 지켜야 하듯이 조직도 자율적이려면 조직이 세운 원칙과 개인에게 부여된 권한의 한계를 지키고 상호작용이 가능한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 번째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칙이 엄격한 조직을 자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스타트 업의 성공신화라고 하는 ‘배달의 민족’을 가장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문화를 가진 기업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배달의 민족이 원칙처럼 생각하는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 중 하나를 보면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라고 되어 있다. 좀 강압적이고 경직된 분위기 같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배민을 가장 수평적 조직문화를 가진 기업으로 보는 것은 이런 원칙을 잘 지키기 때문이다. 조직이 자율적이지 않은 것은 원칙이 많고 엄격해서가 아니라 조직의 원칙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율적이지 않은 조직의 특징은 원칙이 아닌 것을 너무 많이 지켜야 한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출퇴근 시 상사의 눈치를 보고, 복장을 지켜야 하고, 회의 때마다 상사의 취향에 맞는 음료를 챙겨야 하고, 회식은 무조건 참석을 해야 하고, 회의 준비는 막내 사원이 하고, 상사의 식사 시간을 챙기는 등 이런 것들을 원칙으로 정해 놓지는 않지만 원칙보다 더 칼같이 지킨다. 원칙이 아닌데도 눈치껏 지켜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자율적이지 않고 직장이 하루 종일 눈치만 보다 끝나는 것이다. 이렇게 원칙이 아닌 것들을 지켜야 할 때 자율성을 침해받는다. 조직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도 원칙이 없이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3000만 원짜리 자동차를 살 수 있을 정도로 판단 능력이 가진 직원이 조직에서 3만 원짜리 구매 건도 결재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현실이다. 고객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고객가치에 대한 확실한 원칙이 있고 지킨다면 누구든 그것이 무엇이든 자율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다면 결정은 미루어질 수밖에 없고 고객의 불만은 쌓여갈 것이다. 그러므로 자율적인 조직은 원칙은 있지만 사정이 있으니까 나는 이렇게 해도 되겠지 하는 느슨하게 지켜도 되는 조직이 아니라 원칙은 반드시 지키되, 원칙으로 정해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조직이다. 원칙을 대충 지켜도 되는 곳은 회사가 아니라 동아리다. 그렇게 때문에 호칭을 통일하고, 반바지를 입고, 출퇴근이 자유로운 것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바꾼다면 자칫 구성원들이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착각할 수 있다. 최근 버릇없는 직원들이 많아졌다고 생각한다면 지켜야 하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겉만 치장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두 번째는 ‘권한의 한계’를 지키는 것이다.
조직은 대부분 피라미드 형태로 맨 아래에는 사원(사원~대리), 중간관리자(과장~팀장) 그리고 경영진으로 되어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각 포지션에 맞는 권한과 책임이 있다. 그러나 우리 조직이 자율적이지 못한 것은 권한과 책임이 정확하게 지켜지지 않는다는데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권한과 책임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이에 대한 명확함에 있다. 채용 시부터 어떤 역할을 하고 무엇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지 명확하게 하지 않고 경력과 스펙 위주로 채용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중간관리자가 결정해야 할 일을 그 상사가 간섭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직장에서 많이 경험한 일이지만 팀에서 해야 하는 일의 가이드라인을 임원들이 정해주고 그것도 부족해 수시로 간섭했다. 수직적 조직에서 업무의 역할과 권한이 어디까지인가와 별도로 어디까지 결정에 간섭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다. 이 범위를 관리의 폭이라 하고, 관리의 폭을 지키는 것이 아랫사람의 권한을 스스로 결정 내릴 수 있도록 존중하는가이다. 그렇지 않고 중간관리자가 할 결정을 중간관리자의 상사가 간섭한다면 어떻게 될까? 상황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매번 그런다면 어떻겠는가?
이와 같이 수평적 관점에서 업무의 영역과 권한이 어디까지인지의 문제와 별도로, 수직적 관점에서 어디까지 결정에 간섭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있다. 이 수직적인 범위를 관리의 한계라 한다. 위임이 윗사람의 권한을 아랫사람 에게 맡긴다는 의미라면, 관리의 한계는 아랫사람의 권한인 것을 스스로 결정 내릴 수 있도록 존중하는지의 문제다. 보통 관리의 한계는 자기보다 한두 단계 정도가 정상이다. 그런데 비정상적으로 넓은 조직이 많다. 임원이나 대표이사가 사원급 직원을 놓고 깨는 회사가 바로 그런 곳이다. 나도 직장에 있을 때 이런 경우를 많이 봤다. 대표가 회의 때 대리하고 다투는 것은 물론이고, 현장사원들의 답변이 맞고 틀리고를 가지고 시시콜콜 따지는 것을 많이 봤다. 마치 자기가 회사의 모든 것을 챙기고 있고, 자기 없이는 조직이 제대로 안 돌아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착각이다. 이렇게 관리의 한계를 넘어 세부사항까지 통제하는 것을 조직의 암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세부 사항까지 통제하게 되면 좋지 않은 것은 첫째 구성원들이 일을 주도적으로 못하고 시키는 일만 하게 되면서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데 있다. 두 번째 일이 잘 못 되었을 때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용자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지시한 사람은 제대로 시켰는데 실행을 잘못해서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작은 일부터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연습할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에 리더를 키워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리 한계의 폭을 좁히고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권한을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존중해야 한다.
세 번째는 질문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질문하는 문화는 책임을 공유하는 문화다. 상대방에게 질문하고 함께 답을 찾을 때는 단순히 정보만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책임 또한 공유된다. 책임을 공유하게 되면 아이디어, 문제, 결과까지도 공유한다. 더 이상 나 또는 너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질문은 대화와 협력의 표시이기도 하다. 서로 질문을 하게 되면 상대방의 관점과 자기 관점을 분명히 알게 되어 협력하고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상대방의 문제를 물으면 재미있게도 상대방의 문제에 대해 더 흥미가 생기면서 대답을 들으면 그의 반응과 과심에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수직적 조직 문화에서 리더들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묻는 다면, 현명한 리더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묻지 않고, 무엇이 잘됐고, 무엇이 가능하며, 개선안이 무엇인지 묻는다. 가능한 것을 찾고 불가능한 것은 찾지 않는다. 발전과 지속적인 학습에 집중할 뿐 불평과 탈출구에는 관심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이 이루어진다면 자연스럽게 조직은 수평적으로 변한다. 그러나 지시만 횡행하는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바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잘잘못을 따지는 문화는 질책과 책임전가만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답을 찾는다는 것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과거 속에 머물겠다는 의미다. 이런 문화는 호기심, 도전 정신, 모험 정신, 그리고 실패를 권장하지 않는다. 이런 조직은 노골적이든 암묵적이든 경직되고, 안이하고, 방어적이고, 기계적인 사고와 습관을 장려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다. 구성원의 사기가 떨어지고 팀워크는 엉망이고 조직이 생명력을 잃게 되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에 대한 믿음과 확실성을 부정해야 한다. 답을 근거로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라 질문으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와 엄마가 시소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시소의 균형이 엄마 쪽으로 기울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두 모녀의 시소놀이를 지켜보았다. 엄마가 발을 구르고 아이는 큰 웃음으로 보답하며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동안 엄마와 아이의 웃음이 놀이터를 가득 채워졌다. 어린아이와 엄마의 시소는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 리더라면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