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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란 Nov 20. 2024

첫사랑은 없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우리'






어느 날 아이가 케케묵은 사진 한 장을 들고 왔다. 스티커 사진. 지금의 인생네컷 2009년 버전이라고 할까. 요즘 감성 가득한 인생네컷과는 확연히 다른 현란한 스티커 장식과 뽀샤시한 얼굴이 클로즈업된 유치한 사진이다. 이걸 어디서 찾아왔데? 내 방 철제 서랍장 깊숙이에는 아직도 차마 버리지 못한 상자가 있다. 철제 초콜릿 케이스에 6년 연애했던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뒀다. 연애편지에서부터 스티커 사진과 직접 인화한 필름 사진까지. 모든 걸 잘 정리하는 나도, 차마 그건 버리지 못했다.



그 사진을 기억한다. 여러 스티커 사진 중에서도 가장 자연스럽게 잘 나왔다고 그가 자신의 지갑에 넣고 다녔던 사진이다. 꽤 오래 그러고 다녔다. 첫 연애가 수줍었던 나는 대놓고 그러지 못했음에도, 그의 지갑에 담긴 그 사진을 볼 때면 좋았다. 짧은 단발에 약간의 펌을 한 나와, 정장을 입은 이제 막 사회 초년생인 그의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엄마, 이게 누구야?" 9살 아이는 알면서 일부러 장난을 치듯 물었다. 유독 아빠를 자주 놀리는데, 엄마 옆에 이 남자는 누구냐고 웃음 띈 얼굴로 묻는다. 아이가 건넨 사진을 아주 오랜만에 받아 들고는, 한참 쳐다봤다. "아, 우리 000 씨네!(나는 그를 이름 석자를 붙여 불렀다). 내가 사랑했던 000 씨야. 엄마 첫사랑이야!" 아이는 웩하고는 가버렸지만, 나는 나의 첫사랑을 아주 오랜만에 마주했다.



그래, 내가 이 얼굴을 이 웃음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웃을 때 자연스럽냐며 나도 그러고 싶다고 이를 드러내며 웃기 시작했고, 이제는 양쪽 입가를 끌어올려 웃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아 졌다. 머리 스타일을 어찌나 잘 만지는지. 그의 머리 모양은 항상 예뻤다. 당시의 정장핏은 슬림한 스타일로 베스트를 함께 입는 스타일이 유행이었고 날씬한 긴 상체는 그게 잘 어울렸다. 그때의 그의 모습이 그대로 그렇게 와락 나에게 왔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맞아, 그랬지 그랬어. 그리고 내친김에 내 추억상자를 찾아 나머지 사진을 찾아봤다. 그때 나에게 써주었던 편지 속 그의 손글씨를 기억한다. 너무 작게 쓰는 글씨체를 나는 놀렸었고 그는 그게 창피하다고 했었다. 어딘가에 놀러 간 사진들 속에서 우리는 환히 웃고 있었고 사진들은 구겨져 있었다. 그때 그 사진들을 구기고 던지며 헤어지네 마네 했던 자잘한 기억들도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왔다.



나의 첫사랑은 웃는 게 예뻤고, 늘 내 손을 잡았고,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멀리 갔고, 각자의 집으로 아쉽게 헤어졌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나를 향해 웃지 않고, 내 손을 놓았으며, 우리는 자가용을 타고 앞만 바라보다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고단하게 늘 먼저 잠든 그의 옆얼굴이 너무나 익숙해서 나는 나의 첫사랑을 잊고 살았다. 그리고 그 첫사랑 옆에서 해사하게 웃고 있는 그때의 나도. 



첫사랑은 추억 속에서 있을 때 빛나는 법이라고 했다. 나는 매일 나의 첫사랑을 마주한다. 매일 딱 하루치의 늙음을 얼굴에 얹고 세상사 피곤함을 어깨에 이고 생기가 줄어가는 중년이라는 그림자를 끌며. 그렇게 매일 그를 마주한다. 나의 첫사랑은 아름다웠으면 좋겠어. 내가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 애잔한 마음과 서러운 마음이 한데 뒤엉켰다. 아이에게 다른 사진을 하나 더 보여줬다. 이거 엄마아빠다. 그 사진 속에서 우리는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었고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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