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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란 Nov 27. 2024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해

자주 헤어지자고 하는 그대에게






처음으로 그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는 연애를 시작하고 막 100일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우리가 아니고) 내가 100일이나 사귀다니. 믿어지지 않을 때마다 내 왼쪽 약지에 끼워진 작은 링으로 나는 그것을 실감했다. 10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자친구란 표현도 낯간지럽고 사귄다는 행동도 당최 뭘 해야 하는지 몰랐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남자친구인 것 마냥 줄곧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그와는 달리 나는 내내 어색했다. 초보에 숙맥이고 괴짜 같던 나는 그의 과잉 행동(왜 주말을 꼭 함께 보내야 하지?)이 부담스러웠고, 그는 조금 외로워 보였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떤 날, 우리 집 근처 놀이터에서 처음으로 크게 싸웠다. 싸웠다라. 지금 생각해도 나는 어리둥절하고 그가 일방적으로 화내는 꼴이 맞지 않나. 아무튼 내가 기억하는 한 장면은 마치 유치한 영화의 어느 씬처럼 그가 자신의 반지를 빼서는 놀이터 수풀 속 어딘가로 던지며 끝내자고 소리치는 컷이다. 아, 이토록 유치할 수가. 나에게 닥친 현실보다 그 뻔하디 뻔한 고루한 장면에 내가 놓여 있다는 게 우스워 웃음이 피식 났다. "아니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다 큰 어른이...이라는 말은 숨겼지만 나는 정말이지 단순하게 우스워서 웃었고, 그게 결과적으로 그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는 걸 (훗날에야) 알았다.



"너 같은 애는 정말 싫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지, 불과 1시간 전만 해도 엄청 다정했잖아. 나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그 사람이 소나무 같다고 생각했는데?(그러니까 얼마나 착각이야). 지금 나의 소나무는 나를 향해 차갑게 뒤돌아섰다. "헤어지자. 더는 못하겠다." 처음으로 그 말을 듣자 머리가 띵해지며, 세상만사 심드렁했던 나도 갑자기 절박함이라는 게 생겨났다. 미안해요. 간절하게 그를 붙잡았다. 오 마이갓. 이게 무슨 꼴이야. 내 꼴이 상당히 추하지만 일단 잡고 보자. 나는 생각보다 자존심이 세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와 연애하며 알게 된 첫? 순간이다.



싸늘하게 식은 그의 얼굴을 보니 미안함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다 끝났군. 낙담하는 순간. 그가 반지를 찾자고 했다. 응? 반지? 아 그렇지. 함께 반지를 찾으며 나는 웃으면 안 되는 데 또 웃음이 피식 났다. 우스워서. 그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게 연애라는 게 참으로 싱거워서. 



그날 이후, 한동안 나는 그에게 아주 잘했다(고 믿는다). 의외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그에게 평일 점심때마다 점심밥 문자도 잘해줬고, 나를 데려다주고 가는 길에는 심심하지 말라고 문자 친구도 했으며, 몸이 아프다고 할 땐 어떻게 하며 걱정하는 말투도 해줬다. 그런 걸 다 해야 하는지 그전엔 정말 몰랐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젠가 또 싸우고 그는 헤어지자고 하고 나는 사과를 하고 다시 화해를 하고. 그리도 또 싸우고 그는 헤어지자고 하고...(제발 그만)를 무한 반복한 긴 연애를 이어왔다.



6년 연애를 하며 내가 헤어지자고 한 적은 딱 한 번이었고(있어서 다행이다), 나머지 대부분이 그였기에. 나는 스스로 믿었다. 내가 그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구나. 사랑은 완벽하게 반반이 될 수 없구나. 더 많이 사랑하는 쪽과 덜 사랑하는 쪽이 있구나. 마음이 씁쓸하네 그러나 별수 없지 해버렸다. 그럼에도 마냥 억울하지만은 않았는데, 그 이유를 몰랐다. 그냥 내가 조금 덤덤한 사람인 줄 알았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여전히 싸웠고. 그리고 헤어지자고 했다. 이번에 헤어지면 이혼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을까. 어느 날 그러자고 하고 아이를 안고 짐을 챙겨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내 머릿속엔 당장 숙박을 하며 지낼 곳과 다음날의 출근을 떠올리며 이혼 준비 과정을 머릿속에 그려 나갔다. 마치 이런 날을 준비라도 하는 듯이. 그가 처음 헤어지자고 말했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어쩌면 이 날을 위해 버텨온 것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생각했다. "잘 지내,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내 얼굴이 명랑했을까. 절대 울지 않을 것 같은 냉정한 그의 눈이 빨개졌다. 



"잘 못했어. 가지 마" 

또 그렇게 싱겁게 끝났다. 



그렇게 우리는 10년이 넘게 이어오던 고질적인 '헤어지자'를 종료했다. 이제는 커가는 아이 곁에서 아빠가 말이야 엄마를 잡고 눈물을 찔찔 짜지 뭐냐 하면 그는 네 엄마는 아빠를 잡기 위해 무릎도 끓었다 하며 반격을 한다. 차이가 있다면 '응 그래 엄마는 그랬어'하며 인정하는 나와 달리 자신은 '절대 울지 않았다'며 펄쩍 뛰는 그가 있다. 그 순간 내 마음이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을 수만 있다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지금도 믿는다. 내 무릎 따위 땅에 닿은들 무슨 대수랴, 다치는 게 내 마음만 아니면 되지. 나를 위해 그를 잡았고, 그렇게 나는 그를 사랑하는 나를 아꼈다. 이렇게 헤어져 버리면 내가 그를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게 두려웠다. 마지막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 나는 그 한방을 위해 그렇게 그를 사랑하는 척 나를 사랑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쯤 와서의 결론은? 아무렴. 그래 아무렴이 되었다. 아무렴 어때. 우리는 여전히 함께 살고 있고, 아직까지도 헤어지지 않은 걸 보면 나름 사랑해 왔고 사랑하는지도. 오랜 시간 고민했던 '헤어지자'의 의미도 이제 그쯤이면 된 것 같다.  역시나 너무나 싱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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