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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T Aug 02. 2024

잃어버릴 것들

달빛

"뭐 해?"


어두운 창문 밖, 모기장에 나방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나방은 실보다 가는 다리로 모기장을 붙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언니의 목소리에 잠시 시선을 돌렸다.


"여기 나방 있어"


집안의 불빛을 보고 찾아온 모양인데, 안으로 들어오고 싶은지 떠나지 않는다. 언니는 고개 돌리며 나방을 힐끗 쳐다보았다.


"어? 귀엽다!"


"귀엽다고? 미쳤어, 징그러운데."


모기장에 붙은 나방은 작은 네모를 칸칸이 움켜잡고 있었다. 궁금증이 생긴 나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나방의 배가 약하게 부풀어지고 꺼질 때마다 세세한 털들이 움직였다. 내 팔에도 찌르르 소름이 돋았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 징그럽다면서?"


"아니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라... 으윽"


"근데 신기하다. 이렇게 가까운데 도망도 안가네?"


"빛 때문에 미친 거지. 들어오겠다고 죽자고 덤벼들지 몰라."


"계속 볼 거야 나 먼저 씻는다? “


"응, 이따가 씻을래"


가만히 있던 나방이 갑자기 날아들었다. '퍼드득!'


"깜짝이야!"


나방은 모기장에 몸통을 들이받더니 다시 네모칸 위로 앉았다. 종종 이렇게 찾아오는 것들에게 묻고 싶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들어오려 하는지. 까만 갈색 눈을 쳐다보지만 너무도 작아 무엇이 비치는 지 알 수 없다.


나방은 달빛에 움직인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어린 시절벌레를 무서워하던 친구가 가로등 밑에 죽은 커다란 나방을 보며 하던 말이 생각났다.


"다른 벌레는 무서운데, 나방은 안 무서워."  


"거짓말 치지 마. 가까이 가지도 못하면서"


친구는 얇고 긴 나뭇가지로 멀찍이서 날개를 들춰보며 말한다. "얘네는 달빛을 따라 움직인대. 신기하지?"


"정말? 어떻게 알았는데?"


친구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우리 할머니가 그랬어. 달빛을 보면서 비밀을 찾으러 다니는 거라고.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말래."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나방을 바라보았다. 날개는 찢어진 주황색과 갈색이 뒤섞여 마른 나뭇잎 같았다. 만지면 퍼석거리며 부서질 것 같았다. 나방은 툭치면 도망갈 것 같으면서도 불빛을 향해 여전히 매달려있었다. 이 나방이 캐넬 비밀이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안 씻어?" 언니가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털며 말했다.


"알았어, 가." 샤워하고 나면 갈까 싶어 불을 끄고 방문을 닫았다.


돌아오니 모기장에 아무것도 없었다.

불이 들어온 건너편 가로등이 보인다.


'툭! 투툭!'


자그만 날벌레들 사이에서 나방들이 밝은 조명을 둘러싸고 끝없이 비행한다. 세상의 위아래가 구분되지 않는 듯 빙글빙글 뒤집혀 돌고 있다. 바싹 마른 주황색 나방을 찾아본다. 멀리 있어 아까 본 나방은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바라보다 창문을 닫았다.


그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어젯밤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랬다고? 달빛이랑 무슨 나방? 기억 안 나는데."


"네가 그랬어. 할머니한테서 들었다고"


"하도 벌레를 무서워하니까 해준 말이겠지. 별 걸 다 기억한다."


"그래서 죽었어?"


나방들은 달빛을 찾기는커녕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자살 비행을 하고 있었다.


"음... 아마도?" 커피잔 속 빨대를 빙글빙글 돌린다.


"네가 떠나니까, 다른 빛을 찾아갔겠지. 눈앞에서 죽은 게 아닌 게 어디야. 생각만 해도 소름 끼쳐.”


나방이 불빛에 이끌리는 모습이 신경 쓰인다.


"뭘 그렇게 쫒는 걸까?"


"진짜가 뭔지도 모르고, 반짝이는 빛이라면 따라다니는 거지."


밤에 창문을 열면 종종 찾아온 것들을 보고 멈칫했다.

잃어버릴 비밀을 감싸 안고 빛 마른 날개로 함께 나뒹굴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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