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선언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지금 여기엔
당신이 발 둘 틈이
없습니다.
변명들은
소용없어진지
오래입니다.
그러면
왜?
라고 물으신다면,
그 답은
제가 아니라
당신이 내릴 테지요.
언제나 그랬지만,
당신이 알던 저는 없습니다.
여기엔
저 밖에 없습니다.
그는 이제껏 쓴 시를 모두 태워버리겠다 결심했다. 불길 속에 사라지는 종이들을 보며 그는 느꼈다. 검게 타며 쌓여온 감정들은 조금씩 가벼워져갔다. 포기하는 것이 그를 위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 이외의 불행은 이제 보지 않기로 했다.
민우는 시를 쓴다. 한때 문학계의 떠오르는 스타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격렬한 비판에 직면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시는 재미도 감동도 없다." 그가 쓰는 것은 고뇌와 절망이었다. 즐거움과 감동, 희망 뒤에 있는 것들을 낱낱이 보여주려 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화려한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을 앞에 두고 폼을 잡는다. 빛나는 유리잔, 색색의 요리들이 가득한 테이블에서 저마다의 포즈를 취한다. 그들에게는 누군가 제대로 먹지 못해 울고 있는 현실이 보이지 않는다. 만끽하고도 남은 음식들은 가차 없이 쓰레기통으로 간다. '그런 거 생각하면서 먹을 거면 너는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배가 부르지 않으면 불행이라 여겼다.
그는 인간을 걸어 다니는 불평쟁이들로 본다. 주어진 것에서 필요이상을 갈구하는 족속들이다. 아름다움 뒤에는 숨기고 싶은 추함이 있다. 깨끗하지 않지만 예의를 차린다. 대놓고 더러운 것은 차라리 봐줄 만한 멍청함이다.
신나는 파티 속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겉으로 웃고 있다. 그들이 던지는 "재미있다'는 말속에는 서로를 평가하는 칼이 숨겨져 있다. 과한 옷을 입은 친구의 몸매를 몰래 가늠하며 웃는다. 서로의 최근 일들을 비교하며 자신의 삶이 더나은지 아닌지를 가린다. 돈과 능력을 저울 삼아 난도질한 채로 파티를 이어간다. 그들은 서로를 진정으로 즐기지 않는다. 상대의 못난 점을 찾아내 자신을 드높인다. 점수는 비교로 곤두박질쳤다가도 악착같이 평균을 매긴다. 그들은 자신이 낮은 걸 불행이라 여긴다.
그는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마신 후 시를 썼다. 매일같이 시를 쓰지만 그의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현실을 발가벗기는 그의 시는 쓰다. 씁쓸한 맛 뒤에 온점을 찍는다. 점이 찍힌 문장들은 기쁨을 주지 않는다. '이제 그만하자' 민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시는 어두웠고 누구도 이해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들은 웃고 떠들며 즐거운 순간들로 소통할 뿐이었다. 세상은 가벼운 웃음으로 물들어 있다. 자신에게 해로운 걸 절대로 쳐다보지 않는다. 불행은 그들의 옆에서 더욱 괴롭다.
시를 왜 쓰는가?
그는 노래할 것을 잃었다.
세상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에게 철저히 무관심하다. 그에게 있어 행복은 불행을 보기 좋게 포장한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진실로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격렬한 비판도 이 때문이었다. 처절한 행복만을 원하는 사람들은 그의 시를 용납할 수 없었다. 민우의 시가 읽힐 수 없는 이유다.
삶을 왜 쓰는가?
그는 스스로 소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