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꽃
물결을 긁고 지나가는
바람이 베틀을 엮는다.
숨어있던 물고기가
비늘을 드러낸다.
구름 그림자에
젖은 물고기 비늘은
사라졌다
빛이 닿아
발목 잡힌다.
바람은
물고기를 엮어 놓지 않는다.
일렁이게만 할 뿐
우거진 나무 그늘 사이로 바람이 드나드는 강에 작은 불꽃이 살고 있었다.
작은 불씨를 비늘 사이에 품고 있는 물고기다. 그녀의 이름은 비단.
비늘의 중심에는 불씨를 닮은 오렌지빛의 작은 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원은 마치 미세한 불꽃처럼 고요하게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줬다.
그녀는 특별한 존재인 만큼 다른 물고기들에게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었다.
주변의 물고기들은 감탄하며 다가왔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다.
“비단, 너의 비늘은 정말 아름다워! 나도 너처럼 멋지게 빛나고 싶어”
한 작은 물고기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그렇게 특별한 건 아니야. 그냥 이렇게 태어났을 뿐이니까.”
그녀는 그런 시선에 익숙해 있었다.
작은 물고기는 비단의 비늘을 쓸어내리며 감탄했다.
“근데 조심하는 게 좋겠어. 근처에 요새 낚시꾼들이 자주 온데,
잘못해서 눈에 띄면 위험하다고.” 라고 당부를 주며 작은 물고기는 사라졌다.
한 아이가 물가에서 아빠의 옷을 잡아당긴다. 아빠는 궁금한 듯 아이가 가리킨 물속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비단의 비늘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신기하네, 한번 가까이 가보자.” 아빠는 자신의 낚시도구를 챙겨 물가로 나아갔다.
“와 이거 봐! 예쁘다!” 아이는 감탄하며 비단이 더 가까이 다가오도록 숨죽이고 기다렸다.
낚시꾼은 순식간에 담가둔 뜰채를 들어 올렸다.
“잡았다! ”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짙은 초록색 그물망 속에서 물고기는 몸부림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잎사귀에 물이 몇 번 튕기더니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낚시꾼은 허둥지둥 물건을 챙겨 아이를 안아 들었다.
물고기를 넣어 묶어둔 그물은 불어나는 물살에 좌우로 흔들거렸다.
“아빠, 물고기가 괜찮을까?”
“걱정하지 마. 비가 좀 멈추면 다시 데리러 오자.”
그들은 비를 피해 근처로 사라졌다.
비좁은 어망 속에서 비단의 비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오렌지 빛은 점점 옅어지고 그녀의 감각도 날카로워져 갔다.
비단은 손끝으로 비늘을 더듬어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비늘 사이사이에는 미세한 물방울이 수없이 맺혀 눈물주머니를 매단 듯했다.
‘색이 사라졌어 …’
비단은 수없이 탈출을 시도했다. 지느러미는 찢어져 가고, 거센 빗줄기 소리가 그녀를 재촉했다.
그러나 꽉 묶인 그물망 줄을 풀 수 없었다.
퍼붓는 장맛비와 함께 절망감으로 소용돌이쳤다.
‘이대로 죽는 걸까? 비늘 색은 왜 없어진 거지?’
사라진 빛은 자신은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비단은 불씨를 찾을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녀는 비늘 하나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흔들리는 물속에서 가장자리를 날카로운 돌벽에 사이에 끼워 힘을 줬다.
“악!” 비명과 함께 비늘은 떼어지지 않고 덜렁거렸다.
고통이 찢어진 상처로부터 뒤집혀 전신을 감싸왔다.
그녀는 빛이 처음부터 없었다면 불행해지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
왜 모두들 그 작은 불씨에 집착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다시 한번 힘을 주었다. ‘쩍!” 비늘이 부러 지 듯 떨어져 나갔고, 붉은 물이 비와 섞여 춤을 췄다.
그녀는 이제 뜯긴 속까지 헤집었다. 희망이 더 이상 무너질 수 없을 때까지 변해버린 것들을 잡아 뜯어냈다.
자신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떼어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떨어져 나가는 회색 빛 비늘들은 비단 곁에서 꿈처럼 힘없이 흔들리다 사라졌다.
검고 묵직한 고통에 그녀는 더 이상 눈을 뜨지 못했다.
창 밖은 여전히 비가 내렸다. 식탁에는 아이와 아빠가 저녁을 먹고 있다.
“맛있어?” 아빠가 젓가락으로 가시를 발라내며 말했다.
“응! 근데 예쁜 물고기는 어디 갔어? 어항에 넣어주려고 했는데”
“가보니까 그 물고기가 없었어. 비가 와서 도망갔나 봐 “
“나중에 다시 볼 수 있겠지?”
아이는 실망했지만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바람은 물고기를 엮어 놓지 않았고, 불씨를 강가에 일렁이기만 했다.
그 빛은 구름 그림자에 젖어 사라졌다가, 물결에 발목이 잡히면 다시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