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것이 행복. 더블 하모니, 서로 조화를 이루는 쌍화탕.
무수한 한약 처방명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처방명은 <쌍화탕(雙和湯)>이다. 서로(雙) 조화(和)를 이룬다는 뜻이다. ‘기’와 ‘혈’의 조화,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룬다는 말이겠으나 사람과 사람이 조화를 이뤄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한다는 또 다른 의미가 더해질 여지가 있다.
우리 한의원도 지역사회와 연계된 후원이나 봉사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고민을 했다. 그러나 한약의 특성상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맞춰 준비하는 맞춤 처방이다 보니 적당한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쌍화탕>을 떠올리게 된 계기를 마주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쌍화탕>은 판매용보다 후원과 응원을 위해 더 많이 달여지고 있다.
시작은 조슈아라는 외국인 환자였다. 그는 2주일에 1회 수원역 노숙인들에게 밥을 제공하는 봉사를 한다고 하였다. 때는 아주 추운 겨울이었는데 노숙인들이 쉽게 감기에 걸린다는 것이다. 퍼뜩 몸을 따듯하게 할 수 있는 쌍화탕이 노숙인들의 감기 예방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슈아에게 밥 봉사를 할 때 쌍화탕도 전달해 달라며 2주일에 1회씩 쌍화탕 후원을 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한 우리 환자 에스더 님께서 팔을 걷어붙였다. 샌드위치를 후원하겠다며 무려 30여 개의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갖고 오신 거다.
에스더 님은 우아한 외모의 소유자로 사실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혔을 거 같은 사모님 분위기를 갖고 있다. 그렇기에 대량의 샌드위치를 만들어오셨을 때 다소 놀랐다. 너무 매력 있잖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장을 보고 샌드위치를 만든 후 당시 두 돌도 안된 아기는 맡긴 채 샌드위치를 이고 지고 오신 것이다. 게다가 샌드위치의 내용물은 꽤 실했고 포장까지 정성과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조슈아가 말하곤 했던 "God multiplied it!"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샌드위치 안에 양파 있다고 자일리톨 껌까지 넣는 센스라니!
격주로 동탄에서 수원까지 쌍화탕 배달을 했던 조슈아가 한국을 떠날 때가 왔다. 올 때마다 쿠키니 커피니 들고 왔는데 마지막 인사 때엔 꽃을 갖고 온 조슈아. 너무 스위트하다. “조슈아, 너는 옵션이 많은데 우린 옵션이 없어. only Double Harmony Tea.”라며 마지막 선물로 쌍화탕을 안겼다.
조슈아는 그렇게 행복 바이러스를 남기고 ‘I will be back!’을 외치며 한국을 떠났다. 항상 같은 시공간에 있는 건 아니지만, 인생궤도에서 잠깐이나마 서로 겹쳐 있다가 이렇게 기분 좋은 이별을 하는 것도 사는 맛이다. 노숙인은 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따듯한 보약도 필요하다는 것을 조슈아를 통해 떠올릴 수 있었다.
이러한 소식을 나는 SNS를 통해 공유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역시 우리 환자분인 민지 엄마께서 연락이 왔다.
“제가 매달 쌍화탕 금액을 입금할 터이니 필요한 분들께 보내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민지 엄마의 쌍화탕 후원이 시작되었다! 매달 어려운 이웃 또는 사회를 위해 힘쓰는 분들께 응원의 쌍화탕을 보내게 된 것이다. 친손주 2명과 외손주 2명을 키우는 조손가정의 할머니, 세 아이의 아빠이면서 돈 안 되는 변호만 하시는 박준영 변호사님 등 민지 엄마 덕에 적지 않은 분들께 쌍화탕을 전달할 수 있었다. 개인들이 짜는 안전망으로 살만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느낌이었다.
한 번은 민지 엄마께서 세월호 유가족에게 쌍화탕을 보내 달라하셨다. 쌍화탕만 보내기보다는 메시지를 함께 넣고 싶었다. 그러자 역시 우리 환자분인 서빈 엄마께서 “잠깐만요!” 하시더니 노란 포스트잇을 들고 서빈이 다니는 초등학교로 가서 아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받아오신 거다.
메시지만 받아온 게 아니라 일일이 노란 리본으로 묶는 디테일까지! 서빈 엄마가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받고 있으니 지나가는 아이들이 “포스트잇을 주시면 친구들한테도 받아올게요.”라면서 친구들한테 받은 응원의 메시지를 저렇게 아파트 현관에 걸어놨단다.
공감능력이 이 시대에 최고로 필요한 능력인데 솔빛초등학교 친구들 너무 이쁘다. 함께 기억하겠다는 메시지만큼 유가족에게 힘이 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메시지가 무려 70개가 되어 30팩의 쌍화차에 다 붙일 수 없어 그만큼 쌍화탕을 추가로 더 넣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땐 각자도생 해야 하지만 그 와중에 이렇게 개개인이 함께 하는데 사회를 살아가는 의미와 기쁨이 있다. 환자분을 치료하는데 한의원의 일차적 목표가 있지만 환자분들과 이렇게 또 다른 치유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민지엄마의 시작으로 서빈 엄마를 통해 솔빛 초등학교 아이들의 참여까지. 모두 감사하다. 유가족께서는 쌍화탕의 효능보다 붙여진 메시지가 더욱 강한 치유의 힘이 되었을 거다. 아름다운 엄마들 같으니라고! 비주얼만 최고가 아니라 마음도 너무 아름답다.
2016년엔 이대생들이 쌀쌀한 날씨 속에 난방 안 되는 석조건물 안에서 80일 이상을 농성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아가씨들 몸 차가우면 안 되는데 싶어서 쌍화탕을 달였다. 한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문제이기도 했다. 한약 그 이상의 의미. 직접 시위는 못해도 병든 사회를 치유하는 현장엔 항상 응원의 쌍화탕을 달여 보냈다.
김형석 선생님이 그랬다. 백 년을 살아보니 더불어 살던 때가 행복했다고. 더블 하모니, 서로 조화를 이루는 쌍화탕. 뜻에 맞게 앞으로도 쌍화탕은 응원이 필요한 현장에 달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