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께서 달여준
노산며느리 순산보약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 - 순산보약 달생산(達生散)

by 리아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 - 순산보약 달생산(達生散)

“재규 이름을 바꿀까도 생각했다.”


선산을 거닐며 생전에 아버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다. 선도 많이 보였지만 결혼생각이 없는 아들, 한의대를 졸업했으면 얼른 개원을 해야 할 터인데 여행을 한답시고 밖으로 돌기만 하는 아들에 대한 걱정이 한가득이셨던 모양이다. 오죽하면 아들 이름을 바꿀 생각까지 하셨을까. 그런데 여행 중에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상대가 누구이던간에) 그저 만족하셨던 아버님.


아버님은 1963년부터 경북 문경에서 한약방을 시작하셨다. 앞편에는 한약방이, 뒷편에는 집이 있는 구조였는데 집으로 들어가는 통로의 우측에는 커다란 냉장창고가 있었다. 1층만이 아니라 2층도 약재로 꽉 차 있었는데 쌀가마니만큼 무거운 약재를 2층까지 나르는 것이 힘겨워 1층에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하셨단다. 내가 결혼할 무렵에는 아버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한약방을 정리하고 있는 시기였고 약재를 실어 나르던 1층의 엘리베이터도 멈춘 지 오래였다. 하지만 약재의 잔향은 공기 중에 묵직한 존재감을 뽐내며 전성기 시절을 냄새로 전해주고 있었다.


한약방으로 손님들이 오시면 어머님과 숙모님들은 인삼차를 나르느라 바쁘셨다고 한다. 집과 일터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에서 아버님은 손님의 맥을 잡기도 하고 바둑도 두면서 한약방에서 하루를 보내셨단다. 그 시대의 아버지들이 그러했듯 하루도 문을 닫지 않고 1년 365일을 일하신 것이다. 시가 한약방에는 약탕기가 여러 대 놓여 있었는데 그 약탕기들이 24시간 풀가동하는 공장마냥 밤새 돌아가기 일쑤였단다.


“내가 달생산(達生散)을 지어주마.”


출산을 한 달 정도 앞둔 어느 날, 아버님은 내게 달생산을 지어주시겠다고 하셨다. 달생산은 축태음(縮胎飮/ 태아를 축소시킨다는 의미)이라고도 하는데 쉽게 말해서 양수에 불어 있는 태아를 단단하게 만들고 산모에게 기혈을 보태어 순산을 돕는 처방이다.


출산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있었던 나는 효과 여부와 상관없이 꼭 먹고 싶은 처방이었다. 게다가 당시 내 나이 36세로 젊은 산모라 할 수 없었고 한약의 힘이 필요했다. 하루 2번 정해진 시간에 달생산을 먹었는데, 신기하게도 맛이 달았다. 이후로도 한약을 많이 먹게 되었지만 달생산만큼 달달한 한약은 없었다.


눈 뜨고 태어난 딸(feat. 달생산)

달생산이 몇 팩 남지 않았을 즈음, 그 날이 왔다. 진통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첫 아이를 낳았다. 태어나는 순간을 엄마인 나는 오히려 못보고 친정엄마와 남편이 먼저 볼 수 있었는데 딸아이는 눈을 뜨고 나왔단다. 피부도 쭈글쭈글 하지 않고 영글어서 나온 것이다. 눈을 뜨고 밖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나중에 알고 보니 달생산을 먹고 나온 아기는 대개가 양수에 불지 않아 단단하고 맑은 모습으로 나온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함께 한 100일

달생산(達生散), '생명의 탄생으로 도달하게 하는 약'이라는 뜻이 되겠다. 큰 애가 태어날 때 즈음 아버님은 더욱 쇠약해지셨다. 나의 생일이자 큰 애의 100일이 다가올 때 즈음 아버님은 병원에 계셨다. 병원에서 나의 생일과 큰 애의 100일을 함께 했다. 아버님과 함께 한 마지막 가족 경조사였던 셈이다. 그 후로 2개월을 더 병원에 계셨던 아버님은 2010년 2월 2일,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무리 하셨다.


손녀를 안고 있는 아버님

46년간 한약방에서 수만 건의 처방을 내렸던 아버님의 마지막 처방은 며느리의 달생산이었다. 생명으로(生) 이르는(達) 길을 처방하시고 당신을 생을 다하신 것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아버님 처방전의 마지막 페이지를 완성한 마지막 환자였다. 달생산을 먹고 태어난 손녀를 안고 있는 아버님의 사진은 그래서 귀하디 귀하다. (끝)



keyword
이전 01화[프롤로그] 사심(私心)이라는 이름의 약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