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심(私心)이라는 이름의 약재

마음 넣어 달이는 따끈한 한약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by 리아

“사심(私心) 담아 정성껏 달였어요. 꼭 좋아지실 거예요.”


아직 따끈한 한약을 건네며 정성껏 달였다고 생색을 낸다. 정성이라는 말이 진부하여 ‘사심(私心)’이라는 표현을 더한 것이 재미난 오해를 낳았다. 약을 받아 든 환자분이 집으로 가려다 되돌아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런데, '사심'이라는 약재는 뭐에 좋은 건가요?”




집밥을 그리워하는 시대다. 밥상 차리는 엄마 손은 밤새 부채질하며 약 달이는 약손이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의 밥과 약은 각종 인스턴트와 화학약품으로 자연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나마 한의원 탕전실에서 그 옛날의 약 달이는 정성이 이어지고 있다.


한약은 ‘믿음’과 ‘기다림’이 필요한 슬로우 메디신(Slow Medicine)이다. 약을 지어 먹으려는 사람, 처방하고 조제하는 한의사, 약을 달이는 사람도 모두 믿음과 기다림이라는 덕목이 필요하다. 약 보자기에 조제된 약재들은 각양각색의 빛깔과 성질을 가졌거늘 달여 나온 한약은 그저 한 팩에 담긴 시커먼 한약일 뿐이다. 더 건강한 몸을 위해 달여진 약재들의 생전(?) 모습을 찍어두고 싶었고, 어떤 약재들이 들어갔는지 한약을 드실 분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약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약재밥상.jpg 약재밥상. 산조인(대추씨앗)에 녹용스푼 꽂아봤다.


주홍빛 진피(귤껍질), 붉은 대추, 하얀 복령, 상큼한 향내 나는 지실, 대패밥처럼 돌돌 말린 후박, 인디언 밥처럼 생긴 반하 등 약 보자기 안에서는 열매, 씨앗, 꽃, 잎, 뿌리 등 자연이 들어가 있었다. 한데 모으니 약재 밥상이 따로 없다.


아! 나는 단 한 사람이 먹을 약재 밥상을 차리고 있구나!


남편이 내린 처방전은 일종의 한약 레시피다. 그 레시피에 정성을 담아 약을 달인다. 꼭 좋아졌으면 하는 나의 마음, ‘사심(私心)’을 담아 달인다. 그렇게 나의 사심이 담긴 따끈한 약재 밥상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누구에게나 못 말리는 왕년이 있다. 나는 왕년에 심마니도 아니면서 ‘히말라야 석청(石淸)’을 따겠다고 티베트까지 갔다. 세상을 떠돌며 산지에서 나는 단 하나의 약재를 찾고 싶었다. 그런 나의 야성(野性)은 아픔을 통해 누그러졌다. 아프다는 것이 무서운 것임을 알았다. 야성은 꺾였으나 남의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에 도움을 주려는 마음의 약성(藥性)은 더해졌다. 그러한 마음으로 매일 아침 약을 달인다.


남편과 한의원을 함께 운영한 지난 10여 년간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약을 달였고, 새로 인연을 맺을 때마다 약을 달였다. 정현종 시인은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오는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했다. 한 장의 처방전도 마찬가지다. 처방전에 그 사람의 그때 그 시절이 담겨 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성당개 3년이면 복음을 전파한다는데 한의원 10여 년에 탕전실 이야기를 글로 써보려고 한다. 치료 이상의 치유, 효능 이상의 효과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도 공유하고 싶다. 약재 냄새와 더불어 사람 냄새 맡을 수 있는 글, 마음의 기와 혈이 보태져 마음이 따듯해지는 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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