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진 Mar 13. 2023

23-02 도서관 홍보 그리고 기획

급식실 나와 왼쪽으로 열 걸음

2022학년도 2학기, 도서관 리모델링으로 아이들은 한 달을 제외하고 도서관 이용을 하지 못했다. 가끔 책을 반납하러 왔다가 2층 도서관으로 올라오는 아이들도 있긴 했고, 기특하게 나의 안부를 묻기 위해 1층 공사 현장을 뚫고 올라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위험해서 더는 오지 말라고 말렸지만 고마웠다.


이렇게 아이들에게서 멀어지고 말았던 도서관을 다시 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새 학기를 맞이해 도서관 재개관 홍보에 열심을 내고 있다. 일단 포스터를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고, 신입생뿐만 아니라 도서관에 관심도 없었던 아이들까지 모조리 다 오게 만드리라!라는 마음으로 눈이 마주치는 아이들마다 도서관 와볼래? 묻고 다닌다. 새로운 도서관을 기대했을 아이들에게 기대만큼은 아니겠지만 확실히 달라진 도서관, 즉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이젠 1층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고, 민트색 80년대 서가가 아니라 간접조명으로 한껏 멋을 부린 서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게 다 너희들 것이라고!


내부 인테리어가 아무리 좋아도 가장 중요한 것은 도서관의 위치다. 거기에서 일단 회복할 수 없는 점수를 매기는 아이들에게 나는 이런 무리수를 두었다. 


급식실을 나와서 왼쪽으로 열 걸음


실제로 내가 걸어보니 열 걸음은 더 되었지만, 일단 열 걸음을 걷다 보면 도서관이 보인다. 들어와서 열 걸음이 아닌데 왜 그렇게 적었냐고 따지기라도 한다면 대성공이다. 아이들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나의 마음을 너희는 알까.




재개관 준비를 하면서 한 가지 더, 나의 야심찬 기획이 있다. 


아이들 중 50% 정도가 연체를 한다. 우리 학교도서관은 타 도서관과 다르게 연장의 횟수가 없고, 아예 책을 길게 빌려준다. 바꿔보고 싶었지만, 규정을 고치는 일이 번거로울 것 같아 그냥 30일로 했다. 하지만, 30일 동안 한 권의 책을 읽는 아이들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대부분은 사물함에 들어 있거나, 집에 가져다 두고 안 가져왔거나, 기숙사 방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일단 대출할 때 제발 재미없어서 못 읽겠으면 가져오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언제든 바꿔가면 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체를 한 아이들은 다시는 연체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다시 그 자리에서 책을 빌려갈 수 있도록 연체를 풀어주었었다.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한 권이라도 책을 더 읽히는 게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중학교 도서관에 있는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니 거기도 연체를 풀어주기는 하되 그냥은 아니라는 것. 시낭송을 해야 풀어준다는 것이다. 이런 좋은 아이디어가! 그래서 당장 시집 2권을 대출대 옆에 두고, 연체자에게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크게 읽히고 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부끄럽다고 하다가도 읽다 보면 짐짓 진지해진다. 


바쁘고 정신없는 학기 초가 지나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23-01 새 학기(feat. 진급처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