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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Feb 14. 2022

글씨를 그리다

<신글 10-4. 시 '우주'를 그리다>

경기도 교육청 DLS(Digital Library System) 서평단으로 6년 동안 활동했다. 매월 주제에 맞는 어린이책을 소개했는데 활동을 정리하니 아쉬운 거다. 글을 계속 써야겠다는 생각에 브런치에 문을 두드렸다. 작가 신청을 하고 합격(?)이 되어야 발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준비 절차에 곧바로 올인, 며칠 후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작년 말의 일이다. 그런데 혼자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았다. 정해진 주제도 없고 마감도 없는 글이라니. 고작 마음속에 꼭꼭 넣어 두었던 책 몇 권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는 자신이 없어지는 거다.  남들은 어떻게 쓰는 거지? 브런치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신나는 글쓰기'를 알게 되었다. 글쓰기를 신나게 할 수 있다니, 제목에 끌리고 내용도 좋아 보여 일단 시작. 그런데 구성원은 이미 서로 아는 사이가 많아 보였다. 단톡 방에 올라온 빨간 숫자의 개수에 놀라고, 내가 어디까지 봤더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마도 오랜 시간 서로의 성장을 도모하며 함께 글을 써 온 듯. 여기서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나에게 맞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오늘의 미션은 시 필사와 그에 대한 감상. 난 글씨를 잘 못쓴다. 졸필이다. 왼손잡이로 태어났는데, 엄마는 글씨는 오른손으로 써야 한다며, 왼손으로 연필을 잡을 때마다 작은 자로 내 손등을 때리셨다. 굳이 연필을 오른손으로 옮겨 잡게 하기 위함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아직까지 졸필인 이유를 여기서 찾는 것은 변명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시 필사를 하려니 대략 난감해 미리 캔버스에서 글씨체를 살펴보다 '왼손잡이'체가 눈에 띄었다. 똑같이 따라 써 보려는데, 이건 뭐 당최 쓰는 게 아니라 그리는 거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다가 눌러쓰니 그 체가 엉망이 된다. 이게 아닌가? 힘을 빼고 쓰니 좀 낫다. 이 시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문구는 '잠자리가 바지랑대 끝에 앉아 조는 동안'이다. 열심히 사냥한 후 적당한 포만감에 졸음까지 왔을 테니, 왠지 모르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근래에 점심 식사 후 컴퓨터 앞에 앉아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자리 옆에 졸고 있는 나를 그려 넣었다. 멋진 사냥꾼 잠자리는 나름 높은 바지랑대 끝에 자리 잡았다. 그곳이라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려나. 이왕이면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을 나무 위 높은 곳에 잠자리와 나의 자리를 잡아 본다. 이제 안전하다. 잠자리의 우주도 나의 우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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