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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Dec 23. 2021

2015.11.26~29 / 아프지 않은 궁전은 없다

Vienna, Austria / 호프부르크 왕궁

어렸을 적부터 나는 오래된 궁을 좋아했다. 궁궐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사춘기 시절 가슴 설레게 만든 박소희 작가의 만화 '궁' 때문이었다. 원체 궁을 좋아하던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 '아 이곳에서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으로 '궁'을 그렸다고 한다. 좋아하는 작품의 탄생 배경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된 나는 그 이후로도 기회만 생기면 궁을 찾았다. 심지어 종로에서 일할 때에는 한 여름 땡볕에 경복궁을 가로질러 가는 퇴근길이 고되지 않을 정도였다.


고궁에서 느껴지는 그 감정들은 내가 만화가였어도 사람이 실제로 살고 있는 상상을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것이 우리나라 고궁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 생각했던 나는 먼 이국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Habsburgergasse 거리
성 페터 성당(St Peter's Archabbey)
슈테판 대성당(Stephan Cathedral)

오스트리아에서 머무는 날이 늘 그러하듯, 슈테판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 역시 우중충한 날의 연속이었다. 마치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흠뻑 젖는 것을 대가로 날씨를 바친 느낌이었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들은 밤이 되면 마치 하늘에 어여쁜 전구를 단 것처럼 거리를 밝혔다. 성 페터 성당과 슈테판 대성당을 연속으로 돌아본 나는, 이번에도 역시 그 웅장함에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유럽은 하나의 교구처럼 여행 중 심심치 않게 성당이나 교회를 발견하곤 했는데, 하늘 높이 치솟은 성당의 뾰족한 탑을 보자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여 신에게 손을 뻗는 모습과도 같았다. 어느 정도의 신앙이어야지만 저 정도의 건물을 구상하고, 설계하고 지어내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저 시대에는 '어느 정도의'라는 가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까. 


무교인의 시선으로 종교를 바라본다는 것은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숭고해지는 그 위용에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호프부르크 왕궁(Horfburg)

우리나라의 고궁이 절제된 아름다움 속 자연과의 조화가 그 멋이라 한다면 호프부르크 왕궁은 화려함이란 단어를 건물로 형상화한 것과도 같았다. 실제로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왕궁 내 건축양식을 독특하게 지은 것이 특징인 호프부르크 왕궁은 중앙에서 주위를 한 번에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어린 시절 상상한 공주님들의 궁전을 그대로 재현한 기분이 들었다. 유치원 시절 흰 스케치북에 공주와 왕자 그리고 디즈니 로고와도 같은 궁전을 함께 그릴 때와 같은 그 왕궁. 그곳의 한복판에서, 나는 몸을 빙그르르 돌며 한눈에 모든 것을 담고자 애를 써댔다.


궁전을 보기 전, 호프부르크 왕가에 대한 비극적인 역사를 대충이나마 훑어보았다. 이토록 화려한 궁전에서도 실제 살았던 이들의 삶 이면에는 대체로 비극이 머물렀다. 온통 금빛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황실에서 누군가는 남편의 외도와 아들의 자살을 목도하고 심지어 여생을 떠돌다 암살로 생을 마감하고 마는 비극적인 삶 또한 사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궁전이 쓸쓸함을 간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아프지 않은 궁전이 어디 있을까. 어쩌면 역사를 안다는 것은 이와 같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세계사에 불과한 일들이, 가까이 보면 서글픈 개인사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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