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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관에 사는 남자 May 04. 2016

#03. 작가의 태도

작가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언젠가 <태백산맥>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10권이나 되는 분량에 힘들어 지쳐 포기할 수 있었음에도 재밌게 다 읽어낸 기억이 있다. 여기서 재밌게 읽었다라고 함은 '즐거웠다'라는 의미가 아니고 '빠져들었다'라는 의미다.


 즐겁게 읽지 못한 이유는 소설의 소재가 즐거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총 10권인 <태백산맥>은 조정래 작가가 쓴 대하 역사소설 중 첫 번째 소설이다. 이는 6·25 전쟁을 전후 배경을 그린 소설이다. 그때의 민중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역사를 배울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과거가 내게 다가왔다. 내가 살던 시대와는 많이 달랐다. 먹을 것조차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었고, 자유로운 삶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가진 자들의 횡포는 역사에서도 그 모습이 동일했다.


 조정래 작가는 이 소설을 비롯해 <아리랑>, <한강>이라는 대하 역사소설을 총 3편이나 써냈다. <태백산맥>이 총 10권, <아리랑>이 12권, <한강>이 10권이다. 총 32권인 그의 소설은 근현대사의 3부작이라 불리고 있다. 엄청난 분량에 놀랐었지만 그의 글쓰기를 듣고 또 한 번 놀랬다.


 지난번에 읽은 책인 <황홀한 글감옥>에서는 그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때부터 '조정래 작가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 되자'라는 다짐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이번에 <조정래의 시선>이라는 책을 읽으며 그때의 다짐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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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어떤 작가일까? 내가 그를 기억하는 모습은 절제, 노력, 성실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는 역사소설 3편을 써내는 20년 간 술 한 잔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글을 쓰는 일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을 집필할 당시, 하루 집필량을 200자 원고지 35매로 정해 매일 이를 지키며 글을 써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태백산맥>을 비롯해 <아리랑>, <한강> 또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정글만리>라는 책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루도 빠지거나 거르는 일 없이 써나가기 위해서 제 스스로에게 올가미를 씌운 것입니다. 그런 상황의 연속이니 어떻게 취하도록 흔쾌하게 술을 마실 수 있겠습니까.' _ p.53



 그의 책은 우리나라를 벗어나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이 세 편의 소설만 1천 만부가 넘게 팔렸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작품임과 동시에 대단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정글만리>라는 소설의 취재 분량에 대해 들으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조정래의 시선>이라는 책을 보면, 중국을 수십 번 오가며 직접 취재한 내용이 수첩으로 21권, 6~7년 간 신문이나 잡지를 스크랩한 중국 자료수첩이 90권, 중국 통사를 비롯해서 경제를 다룬 책을 읽은 것이 80여 권, 그것들을 다 섭렵한 다음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다시 읽은 책이 20여 권, 그 자료를 다 정리하고 분류한 대학노트가 2권, 구성노트·인물노트·줄거리노트가 각 1권씩 이었다고 한다. 가히 엄청난 분량이다.


 '그 소재를 소설로 완벽하게 형상화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취재하고 연구하고 파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독자들을 만족시키는 작품을 써낼 수가 없습니다.' _ p.121


 그의 노력에는 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 내가 알기에 조정래 작가만큼 절제된 생활 속에서 누구보다 대단한 노력으로 성실하게 글을 쓰는 작가는 없다. 그래서일까 소설만 써냈다 하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 독자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찾는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 그는 하필이면 왜 역사소설을 쓰는 걸까? 다행히 책에는 그 이유가 나와있었다. '역사는 끝나버린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입니다. 슬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면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소설가의 임무 중 하나는 이런 역사의 상처와 고통을 일깨우고, 추체험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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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글을 쓰고자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고 있다. '나의 깨달음을 전하고자'하는 도구 중의 하나가 글이었기 때문이다.


 글 쓰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고, 선생도 없기에 난 조정래 작가를 롤모델로 삼을 생각이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태도가 존경스러웠고, 작가의 소임을 말하는 그에게 강하게 이끌렸다. 


 물론 글쓰기에 대한 자세를 그와 판박이처럼 똑같이 따라 할 수는 없다. 그는 글로만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자 하고, 나는 내 소임을 다하는 하나의 도구로 글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자세를 따르려는 이유는 그보다 더한 작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정래 작가는 작가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의 재능을 믿지 말고 노력을 믿어라, 어느 시대에나 다 문제가 있다. 그런 모순된 현실을 타파하려는 의식을 가져야 위대한 작품이 나온다. 작가는 인간에게 기여할 수 없는 건 쓰지 말아야 한다.'


 인간에게 기여할 수 있는 글, 그것이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이다. 조정래 작가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의 글쓰기에 대한 태도를 본받아 내 글을 꾸준히 써낼 거다. 다른 사람에게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글이든 말이든 최선의 노력을 다할 거다. 그래야 누군가에게 기여할 수 있을 테고, 또 남을 테니까.



 '모든 글은 읽히려는 목적으로 쓰는 것인데, 읽히지 않는다면 그건 글일 수 없고, 또한 남겨지지도 못합니다.' _ p.50


 언젠가는 꼭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조정래 작가처럼 누군가에게 기여할 수 있는, 누군가를 깨어나게 할 수 있는 소설을 말이다.


05.04.16 / 도사남의 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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