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 어떤 조건, 자격을 거는데 익숙한 사람이다.
피부가 좋아지면, 지금보다 10kg이 빠지면, 그걸 갖게 되면 등등
'~하게 되면'이란 전제 조건들이 항상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으로 만든다.
조건은 늘어나기만 하고 난 지쳐만 간다.
현재 갖고 있지 못한 그것들이 있기에 아직은 더 해야 하고 더 가꿔야 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불안감과 초조함.
사랑받을 만한 자격을 갖지 못했다는 결핍감이 잔잔하게 깔려있다.
큰 소동이나 번개 같은 상황보다 일상에 깔려 있는 조용한 불안감이 더 무섭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조금씩 자존감과 판단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 SNS, 책 속에는 배울점이 많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세상이 절대적이라고 여겼던 조건이 없어도 잘 살고 자주 행복해한다.
삶 자체가 충만해 보이고 다음 행보도 거침없다. 이런 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속으로 되뇐다.
거울을 볼 때도 부족한 점이 보이고 커리어면에서도 전문성이 부족해 보인다.
항상 마음'만' 바빠서 머리가 웅웅 거린다.
내가 바라는 '어딘가'는 '지금'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은 달릴 때다.
'지금'을 온전히 쌓을 수 있는 건 두 발로 나아가는 것뿐.
나오기 전에는 양쪽 어깨, 머리에 피로와 고민들이 잔뜩 매달려있다.
물론 나오기 귀찮기도 하고 그냥 눕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꾸역꾸역 운동화를 신는다.
쌓여 있는 모든 것들을 털어내기 위해서.
트랙을 달릴 때는 촵촵거리는 발소리에 집중하고
천변을 달릴 때는 오리와 흐르는 물을 구경한다.
나무와 흙냄새를 코로 담뿍 빨아들이면서 폐를 빵빵하게 만든다.
이럴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허벅지, 오늘 아침 거울 속 얼굴에 있던 잡티,
해결하지 못한 일들. 아까 들었던 피드백, 불편했던 그 사람의 얼굴.
이런 건 달리는 순간만큼은 나에게 없던 일이 된다.
조건 없는 상태
그냥 '나'이기만 한 상태.
이때는 그냥 달리고 숨쉬기만 하면 된다. 나를 판단할 필요도 고쳐야 할 필요도 없다.
모든 게 아주 간단해진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숨 쉴 때는 힘들었던 '지금'이 러닝 안에 있다.
계속 달리면서 현재에만 집중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나중에는 '조건 없는 사람'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머리, 몸, 공간, 관계, 도전, 사랑
이 모든 것들에서 조건이란 항목을 모두 삭제하고
온전히 가볍게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운동화 끈을 묶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