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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냥 Mar 03. 2024

점심시간을 포기한 이유, 상담시간.

상담쌤은 점심 언제 먹어요?

  요즘 학생들은 바쁘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교문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노란색 학원버스를 타고 제각각 학원을 향해 떠난다. 나의 학창 시절처럼,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거나, 학교 앞 문구점에서 한 컵에 500 원하는 떡볶이를 사 먹을 여유도 없다. 언젠가, 5학년 또래상담자 학생에게 "너는 학원 몇 개나 다니니?" 하고 물었더니 "수학, 영어, 미술, 피아노, 코딩, 논술, 태권도, 수영. 이렇게인가? 아니다. 하나 더 있어요."라며 손가락을 하나씩 펼치며 말한다. 아무리 예전만큼은 아니라지만, 요즘도 학부모님들의 교육열기는 뜨겁다.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방과 후에 학생들과 상담시간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고학년일수록 그렇다.


  "수요일은?"

  "수요일엔 수학학원을 가요."

  "음... 목요일엔 다른 학생 상담이 있고, 금요일 방과 후에는 어떠니?"

  "그때는 친구들이랑 그룹으로 미술학원 가요."


  정말이지 스케줄 조정이 너무 어렵다. 가능하면 수업시간 내의 상담은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정말 심각한 경우의 위기 상담이 아니라면 수업시간 내 상담은 여러 이유로 해당학생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1. "쟤 문제 있어서 상담받는대." 다른 학생들의 낙인효과.

  2. "왜 쟤는 수업 안 받고 상담실에서 놀아요?" 오히려 다른 학생들이 섭섭해한다.

  3. 해당학생의 학습권 침해 우려.

  4. '상담실=수업시간에 방해되는 학생을 격리하는 장소'로 악용될 소지.


  실제로, 위의 사례들은 전부 내가 겪었던 일들이다. 특히 4번의 사례의 경우, 나이가 많은 여자 선생님께서 자기가 감당이 안된다는 이유로 툭하면 상담실로 전화를 걸어 "선생님! 얘 좀 상담실에서 데리고 있어 주세요."라며 매일같이 아이를 내려 보냈다. 이는 그 아이에게도. 학급의 분위기에도 결코 좋지 않다.






  그렇기에 내가 학생들과 상담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수업시작 전 아침활동시간과 점심시간이다. 이 시간은 교내 어떤 학생들도 학원과 다른 학생들의 눈치 없이 자유롭게 상담실에 방문하여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단지 하나 문제가 있다면 나의 점심시간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랄까.


  급식실로 내려와 줄을 서고, 밥을 먹고, 상담실에 돌아와 양치를 하면 어느새 점심시간의 반 이상이 훌쩍 지나 버린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천천히 밥을 먹는 편인 것도 한몫하지만. 소중한 상담시간을 이렇게 허비할 수는 없다. 그래서 행정실에 다음 달부터 급식을 먹지 않겠다고 '미급식 신청'을 했다. 대신 집에서 간단히 과일을 싸 오거나 이마저도 귀찮을 땐 대충 아몬드 우유로 때운다.


  "선생님은 밥 언제 먹어요?" "선생님 급식실에서 못 본 거 같아요." 이 말보다 서러운 건 오늘 맛있는 반찬이 나왔다며 내 앞에서 '오늘의 최애 메뉴'를 줄줄 읊어대는 학생들이다. "쌤 오늘 오므라이스 대박이었어요." "오늘 구슬 아이스크림 나왔어요." 슬프다. 이 또한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선생님도 오므라이스 좋아해... 아이스크림도 좋아해...' 그래도 점심시간을 확보한 덕분에 밀려드는 상담 수요를 어느 정도 조절하며 맞출 수 있었다.


  언젠가는, 교감선생님께서 조심스럽게 나를 불러 면담을 한 적이 있다. "저, 선생님. 요즘 학교 생활 힘든 거 없죠? 동료 선생님들이랑은 잘 지내요?" 순간, 퍼뜩! 하고 뇌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 "아아, 그럼요! 아주 잘 지냅니다. 걱정 마세요!" 학교는 의외로 소문이 빠르다. "상담선생님이 밥 안 먹는대."가 "상담선생님이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한대."로 와전되었다. 감사하게도 세심하게 신경 써 주신 교감선생님. 그런데요. 문제는 저의 부족한 사회성이 아니라요. 상담신청 학생에 비해 제 몸이 하나인 탓입니다. 흑흑.


  누군가는 똑같은 월급에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미련하다는 소리도 들었고, 나 또한 내가 어느 부분에서는 고집 있고 융통성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진짜 간절히 필요하면 학원을 빼서라도 상담실에 오겠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담은 단 한 번으로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초등학교의 상담에서는 학생들의 자발성만큼이나 부모님의 '협조'가 필수다. 만약 학원시간을 빼서 상담을 보냈는데, 학부모의 기대치만큼 아이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그다음 상담 시간에도 이 아이가 오리란 보장이 있을까. 마음 아픈 현실이지만, 학원은 돈을 내고 다닌다. 하지만 학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대개 무료다. 나라도, 돈을 지불하는 학원을 몇 번이고 빠지면서까지 열정적으로 자녀를 상담실로 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특히나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학부모님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또한 만약 이 아이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 정말 간절히 상담이 필요할 때, 나와의 경험으로 "상담, 그거 되게 성가셔." 라며 포기하거나 외면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렇기에 아이의 학교 외 시간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점심시간 40분은 정말 귀하다. 가끔 센스 있는 담임 선생님들은, 점심시간에 상담 약속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조금 일찍 점심을 먹게 하거나, 맨 앞줄에 세워준다. 그런 분들께는 정말 감사한 바이며, 이렇게 또 학교 상담은 담임선생님과 관리자, 학부모님과의 협조 여부에 따라 그 성과가 다름을 피부로 느낀다.


  비록 나의 점심시간은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학생들의 변화와 성장으로 나타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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