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산 지 어느덧 2년이 7개월이 되었다.
보이는 부분에서는 완전한 독립이지만 어느 한 구석엔 늘 자리 잡고 있었던 마음 하나가
과연 내가 진정 온전한 나로서 잘 살아가고 있는 게 맞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도보 15분 거리에 부모님이 살고 계시기 때문에 언제든 배고프면 밥을 먹으러 가고
의지 아닌 의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한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독립은 했지만 정신은 독립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완전 의지하는 것도 아닌
아이러니한 상태.
나는 어렸을 적 부모님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고 늘 응원을 받으며 자라왔다.
어린 내가 원하는 부분들을 어느 정도 이룰 수 있게 해 주셨고 소위 말해 강하게 키우기보단
물심양면 도와주려 애쓰셨다.
그래서일까. 유독 의지를 많이 하고 자랐고 언제든 내가 도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독립을 하게 되면서 거리를 두고 바라본 우리 가정의 모습은
성인이 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 있었다.
‘아, 이런 부분 때문에 내가 이렇구나.’ 알게 되는 순간도 더러 있었다.
더 나아가 나의 가치관이 정립되면서 부모님을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물질적인 부분에서는 탓하는 마음에 이르기도 했다.
나는 분명 부모님을 사랑하는데 왜 자꾸 반감이 생기며 탓하는 마음이 양가적으로 드는 것일까?
부모로부터의 독립이란, 부모를 한 인간으로서 분리하여 바라보고 또한 내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때 얻어지는 내적인 상태이며 결실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당신의 인생을
좌우했던 부모라는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고, 그 세계를 놓아줄 수 있을 때 우리는 마침내 하나의 독립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음해방 p.174)
부모는 언제고 나에게 내리사랑을 주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고, 나 역시 부모에게 주어야 할 무엇이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마음해방 p.177)
그러던 중 책의 한 챕터를 만나게 되었고 내용을 반복적으로 읽으며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나의 마음까지 온전히 독립된 상태가 아니었음을.
종교적인 부분도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19로 교회에 나갈 수 없게 되자 온라인 예배가 활성화되었고 그 시기즈음부터
내 믿음도 나약해져 갔다.
그렇지만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 곧 신앙심이 깊지 않았던 것 같다.
감사하는 태도는 진실된 것이지만 감사와 별개로 진지하고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늘 의문이었다. 태어나보니 모태신앙이었고 부모님 따라 자연스럽게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게 되었으며
무의식에 나는 기독교라는 인식이 박혀있었다.
어린 시절 성경학교에 보내지게 되면 어떻게 해서든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핑계를 대었고
성경공부 시간이 지루해 동생 데리고 놀이터로 나갔다가 야단맞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내가 성인이 된 지금 과연 떳떳하게 종교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
답은 ‘no’.
친구들 또한 '주변에 교회 다니는 사람 너밖에 없어, 근데 너 교회 다니면서 할 거 다 하잖아.'
'교회 다니는 건 약한 사람들이 믿는 거 아니야?' 등등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물론 부적절한 내 행동도 문제로 보일 수 있었겠지만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했다.
무교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말하며 어디 가서 교회 다닌다고 말하기 부끄러웠고 자신 없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기도하고 헌금하는 행동은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일이지만
부모님이 주일을 지키기 때문에 지금도 의식적으로 함께 하는 것도 없지 않아 있다.
교회 안 간다고 하면 부모님이 속상해하실 거고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어렸을 때부터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선택권이 없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혼란스러운 마음과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외적으로 내적으로 부모로부터 완전한 독립.
종교에 대한 정립.
더 나아가 주어진 것들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와 진실된 태도로 임하는 것. 앞으로 해나가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