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인생
단발머리였다, 내 첫사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름은 '유진'. 흔한 이름이라 잊고 살다가도 가끔 생각났다. 걸그룹 SES가 데뷔했을 때 가장 예쁜 멤버가 유진이었고, 대학생 때 친구가 짝사랑했던 03학번 여자 선배도 유진이었으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름을 날려 인턴기자 시절 인터뷰를 했던 음악가도 유진이었다.
유진이의 어디가, 왜 좋았는지는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같이 어울리던 친구 S, Y와 함께 반에서 좋아하는 여자애 1위부터 3위까지 이름을 대기로 했을 때 세 명 모두의 순위 안에 유진이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예쁘고 착해서 그 또래 남자애들이 대부분 좋아하는 그런 여자애였다.
그렇지만 유진이를 두고 S, Y에게 경쟁심을 느끼지는 않았다. 감히 내가 유진이를 가질 수 있다거나 사귈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진이는 여자였지만 여자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내가 잡지 속에서 처음 보고, 매일 밤 꿈에 나왔던 그런 여자와 유진이가 같은 여자라는 생각을 당시에는 하지 못했다.
5학년 때 나는 또래보다 조숙해서 '성욕'은 왕성했지만 성욕의 방향 설정이 미처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4학년 때(아마 이때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사는 형네 집에 놀러 갔다. 형은 장롱 깊은 곳에서 영어로 된 잡지를 하나 꺼내 보여줬다.
'충격'이었다. 그동안 나는 여자의 성기를 '엉덩이의 축소판'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친구들과 팔을 접어서 그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장난이나 하면서 히히덕거리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성인 여자의 그것은 뭔가 조개 같기도 했고, 꽃 같기도 했으며, 얇은 살덩이 몇 개를 겹쳐놓고 그 사이에 성의 없이 칼집을 내놓은 모양 같았다.
여담이지만 그 당시 유행했던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다. 혀가 짧아 받침을 발음하지 못하는 아이가 서점에 갔다. 그 아이가 잡지 1권을 사서 서점을 나서는데 그만 봉지가 터져 버렸다. 그 아이는 당황하며 서점 직원에게 "봉지가 터져서 잡지가 나왔어요"라고 말했다. 그런 시기였다.
나 보다 고작 1살 위였던 그 형은 잡지를 보여주며 "나는 하도 자주 봐서 그걸 봐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라고 폼을 잡고 말했다.
그때 당시 주인공이 '타임 브레이크'라고 주문을 외면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내용의 만화책이 있었다. 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시간을 멈추고 형네 집에 들어가 그 책을 훔치는 상상을 했다. 물론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었으므로 그 후로 1년간 나는 매일 밤 꿈에 바다를 가거나(조개를 잡자), 꽃밭에 가거나(꽃향기를 맡자), 미국에 갔다(서양 여자만 그런 걸지도 몰라).
그런 꿈을 꾸게 된 이후로 나는 가능하면 엄마 옆에서는 잠을 자지 않게 됐다. 당시에는 내 방이 따로 없어서 아빠, 엄마와 한 방에서 잠을 잤는데, 그 때 이후로 나는 되도록 혼자 만의 공간에서 잠을 잤다.
하지만 결백하건대 유진이가 그런 식으로 내 꿈에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유진이 혹은 내 주변의 여자애와 잡지 속의 여자를 연결시킬 만큼 여물지는 않았었다. 나는 현실에서 남자와 여자가 좋아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는 전혀 몰랐었다.
실제로 5학년 때 난생처음으로 내게 러브레터를 준 여자애가 있었다. S라는 애였다. 그 애는 편지에다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의 주인공 안재욱보다 내가 더 멋지다고 적었다.
그 편지를 받고 내가 했던 행동은 그 편지를 들고 가서 엄마에게 자랑했던 것이 전부였다. 다음날 S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본다거나, S에게 단 둘이 떡볶이를 먹자거나 제안하지도 않았다. S와 둘이 바다에 가거나, 꽃밭을 가는 상상도 전혀 안 했다.
S는 6학년이 되고 나서도 밸런타인데이에 내게 초콜릿을 줬다. 술병 모양 초콜릿으로 안에 잼 같은 게 들어가 있어서 초등학생이 주기엔 비싸 보이는 그런 초콜릿이었다. 나는 S에게 가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대신 초콜릿을 집에 가지고 가서 엄마에게 다시 자랑을 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로 가서 ‘초딩 5학년’인 나를 좀 패주고 싶다.)
남자가 초콜릿을 받으면 보통 보답 차원에서 한 달 뒤인 화이트데이에 사탕을 주기도 하지만 나는 S에게 사탕을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유진이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진이에게는 이렇다 할 고백 한번 못했다.
겨울 방학을 앞두고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몇 장 샀다. 그중에서 유진이에게 줄 카드만 두 개를 샀다. 하나는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그림이 들어간 멜로디 카드(카드를 열면 음악이 나오는 카드)였고, 다른 하나는 글을 적는 부분이 '하트' 모양으로 된 카드였다. 멜로디 카드는 500~800원 정도인 다른 카드보다 월등히 비쌌고(2500원), 하트 모양 카드는 고백을 하기 위한 용도였다.
방학식을 앞두고 아이들은 하나둘 크리스마스 카드를 교환했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 2위, 3위를 포함해 몇몇 여자애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전해주고, 더러는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어쩐지 유진이에게는 카드를 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유진이에게만큼은 카드를 먼저 받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은 줄고 어쩐지 나보다는 S나 Y가 유진이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진이는 하필 방학식을 하는 당일에 나와, S, Y에게 공평하게 카드를 줬다. 나는 이미 그때 체념을 한 상태로
유진이에게 줄 카드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등신, 쪼다 같았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나는 유진이에게 표현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찌질한 첫사랑에 종지부를 찍었다.
언제나 그렇듯 현실의 결말은 대개 시시하고, 재미없고, 그저 그렇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남자만 있는 중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다모임'이라는 동창생을 찾아주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유행이었는데 다모임을 검색해서 유진이를 찾았다. 한 3~4달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엄청나게 설레었었는데 결국 만나지는 못했다. 그 후로 한 2~3년 정도 가끔 연락을 하다 연락이 끊겼다. 그때 만든 '다음' 메일함에는 아직도 'u-jin'이란 카테고리가 따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