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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e Y Apr 13. 2021

우리 사이, 얼마가 적정선인가

또, 어떤 선물이 적당한가

보통 '우리 사이'에 대한 규명에 불을 피우는 시작은 '결혼'일 것이다. 누구에게 청첩장을 건네야 하는가, 요즘 같은 시대는 더 하다. 코로나로 제한된 인원만 초대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는 모바일 청첩장 링크만 보내야 한다. 모바일 청첩장에는 과거에는 존재만으로 낯부끄러웠던 '계좌번호'가 적혀있다. 모바일 청첩장을 받는 입장이 된 지금은 그 계좌번호가 매우 실속있고 편해졌다. 


결혼식, 돌잔치, 집들이 등 행사가 있을 때 또는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은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곤 한다. 하지만 상대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아 언젠가 갚아야 할 부담으로 받을 때도 있다. 그러면 잘못 건넸나 하는 생각에 아쉽기만 하다. 내게 선물이 주는 가치는 한순간 기분 좋아도 제 역할을 해냈다고 여기는 반면, 실용적인 면을 중시하는 상대는 그런 선물을 받았을 때 썩 기분 좋지 않을 수 있다. 사실 남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을 수 있는 상황이면 물어보고 사면 되지만 필요한 게 있다면 선물보다는 본인이 사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까운 사이에 결혼 선물로 해주는 가전일 때는 반드시 물어보고 당사자가 선택해야 한다. 선물을 주고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면 나의 배려심이 너무 부족했던 걸까. 


에피소드를 말하기엔 애매한 주제라 우리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사례를 쓰는 수밖에 없다. 난 꽃을 좋아한다. 그래서 동네에 꽃집이 하나라도 생기면 기분이 좋다. 꽃은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아니고 사용할 수 있는 소모품도 아니거니와 말 그대로 장식용이며 영원하지도 않다. 집에 들여온 꽃은 물을 매일 갈아주고 줄기 끝을 잘라줘도 일주일이면 수명이 다한다. 그래도 받는 순간 기분이 좋고 매일 식탁 위에 꽂힌 꽃을 보고 있노라면 받는 순간의 기분을 일깨워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남편은 종종 꽃을 사온다. 뭔가 잘못해서도 아니고 뭔가 좋은 일이 있어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 없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아내 기분 좋으라고다. 꽃을 사 오면 엄청난 로맨티스트 또는 가정에 헌신하는 남편상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전혀 아니다. 꽃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물론 남편 지갑 걱정이 돼서 물으면 나름 요령을 터득했는지 일리 있는 대답을 한다. 

"여보, 요즘 꽃값 너무 비싸지 않아?" 

"1만 원에서 2만 원 사이로 오늘 나온 꽃으로 해달라고 하면 돼. 

장미는 비싼데 섞으면 안 비싸. 그리고 그 돈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비싼 값도 아니지."

늙어서도 계속 남편이 주는 꽃을 받고 싶다. 

이 경우는 선물을 하는 사람이 받는 사람의 취향을 알아 성공했지만 가족이 아닌 사이에 상대의 취향을 완벽히 맞추기는 어렵다. 


성인이 되고 놀랐던 건 꽃에 별 감흥을 못 느끼는 정도를 넘어서 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딱히 꽃에 대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럴 수 있다. 사실 내가 꽃을 좋아해서인지 결혼 전에도 동성 친구들끼리 서로 작은 꽃묶음을 선물하고 했다. 그땐 당연한듯 누구나 꽃을 받으면 기분이 좋을 거라는 생각에 그렇게 마음을 전했던 것 같다. 근 2년간 새로 만난 친구들에게도 꽃을 선물한 적이 있는데 혹시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망설이게 되고 선물한 내가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우리 사이, 얼마가 적정한가 또는 어떤 선물이 적당한가는 시간이 답을 줄 테고 또 과거의 인연이라면 멀리 있었던 시간만큼 고민되고 정답이 선뜻 떠오르지 않을만하다. 어떻게 보면 이제는 우리 사이를 신경 쓰고 헤아리기보다는 내 기준대로 내가 챙기고 싶은 만큼 마음 나눈 게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헤아려 하는 선물이 배려이고 내 마음만 투영해 선물에 가치를 두는 행위가 이기적일지 몰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는 마법까지 부리기엔 너무 힘든 세상이다. 선물은 선물이다. 그대가 날 떠올리며 정성스레 고른 선물에 대해 불평하기 보다는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받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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