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지식이 없어도 위험을 줄이며 반셀프 인테리어 하는 방법
인테리어 시공 일정을 정했다면, 공사 현장을 감리할 방법을 알아두자. 감리는 감독 + 관리한다는 뜻인데, 주로 건축 쪽에서 쓰는 단어 같다.
나는 반셀프 인테리어를 할지 고민했던 가장 큰 이유가 설계와 감리였다. 전문 지식 없이 공사를 주도하다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큰돈 쓰고 집을 망치면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어쩌지? 걱정했다. 지금은 다행히 공사가 잘 끝났다. 이 과정에서 감리에 대해 깨달은 걸 정리했다. 같은 이유로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분께 이 글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
턴키에 맡기든 반셀프로 진행하든 감리로 줄일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내 집을 타인에게 맡길 땐 공사 현장에 직접 가볼수록 좋다는 마음가짐을 준비하자. 최소한 철거·설비, 전기, 목공의 시작 미팅과 철거·설비, 목공 끝난 직후엔 현장에 가보는 걸 추천한다. 모든 공정의 결과를 그때 그때 확인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그 이유는 이렇다.
#시공 누락
턴키나 시공팀과 상담할 때 원하는 걸 다 전하긴 힘들다. 심지어 당신도 아직 모를 수 있다. 나도 공정 첫날 "이건 안 해도 되고, 이건 해야겠구나!"하고 마음을 바꾼 게 있다. 시공팀은 대체로 공사 첫날 현장을 보며 해야 할 작업을 확인하고 작업하신다. 평일 낮에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주말에 현장을 보고 시공 범위를 꼼꼼히 정한 뒤 출력해서 붙여두자. 그래야 누락되는 작업을 줄일 수 있다. 다행히 이 과정은 밑작업 공정만 신경 쓰면 된다. 나머지 공정은 밑작업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설계 수정
시공 결과를 보고 당신의 마음이 바뀌거나, 설계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기 전에 빨리 대응해야 반영 가능성도 높고, 비용도 아낄 수 있다.
#불량 시공
턴키는 전체 비용 다 받고 철거만 하고 잠적하는 사기나, 『새로 태어난 마이 홈 인테리어』(장보라, 라이프앤페이지, 2022) 사례처럼 못 살 집을 만든 경우가 있다. 반셀프는 공정별로 따로 계약해서 위험을 분산하는 장점이 있다. 불량시공의 위험을 주관적으로 분류하면 이렇다.
- 작은 위험: 계약, 시공, 정산, 소통 과정에서 기분이 상했다.
- 중간 위험: 처음에 협의한 대로 시공되지 않았다. / 나의 설계 실수를 전문가인 시공팀이 짚어주지 않았다.
- 치명 위험: 집을 살 수 없는 상태로 만들고 잠적했다.
반셀프에서 집주인의 실수는 애매한 부분이다. 하자지만 내 탓이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어련히 알려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혹시 이걸 고려하신 건가요?" 하고 되묻는 시공팀은 만나기 힘들었다. 물어보는 만큼 알려 주시면 다행이고, 답하는 걸 귀찮아하거나 대충 답하는 분도 있었다. 난 부엌 타일 시공할 때 싱크대 붙이는 벽 일부에 타일 붙여야 하는지 몰랐어서, 타일팀 2번 불러야 했다. 괴담이겠지만 집주인이 설계도면을 잘못 그렸는데 곧이곧대로 문을 반대로 달고 간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감리를 누가 할 것인지 정한다. 위험을 줄이려면 직접 현장을 보는 게 좋은 건 알지만, 공사가 평일 낮에 진행되는 만큼 시간 맞추기 힘든 분이 많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선택지를 소개한다.
#직접 감리
시간이 된다면 당신이 직접 감리한다. 공사 품질은 당신의 지식에 달렸다. 최소한 오늘의집 현장 체크리스트를 숙지하자. (준비편, 실전편) 내가 본 것 중엔 가장 깔끔하게 정리된 자료라 추천한다. 그 외엔 자료가 방대한데, 나는 '반셀프 공정 체크리스트'의 검색 결과와 유튜브 인테리어 채널들의 조언을 참고했다.
#지인 감리 대행
가족이나 친구에게 부탁한다. 개인적으론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식이다. 전문가여도 지인에겐 인테리어를 맡기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이 있다는데, 비전문가 지인이라면 더욱 의가 상할 수 있다.
#전문가 감리 대행
턴키에게 전체 공정을 맡기거나, 반셀프 컨설팅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감리만 전문가에게 요청한다. 비용은 들지만 전문가의 눈을 빌릴 수 있다. 방식별 차이점은 『턴키, 대행, 컨설팅, 반셀프, 셀프 인테리어의 장단점』글로 정리했다.
거듭 말하지만 감리 대행을 하더라도, 기회가 되는 만큼 집주인도 현장을 확인하는 게 좋다. 무조건 메모할 도구를 가지고 가자. 휴대폰 타이핑 속도가 빠르지 않다면 펜과 종이를 추천한다. 특히 밑작업 공정에선 메모할 게 많이 나왔다. 현장 구석구석을 보고 신경 쓰이는 것과, 시공팀에게 요청받은 내용, 그 외 내가 확인하고 챙겨야 하는 것을 모두 꼼꼼히 기록하자.
갈 때마다 현장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 좋다. 자재가 도착했다면 포장을 뜯고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보자. 인테리어 소장님과 타일 팀장님의 조언이었는데, 나는 두 조언 다 요긴했다. 새로 산 보일러 컨트롤러가 없어져서 현장 사진을 역추적했고, 수전이 잘못 배송되어 교환받았기 때문이다. 분실하면 안 되는 자재도 경고문과 함께 안전한 장소에 보관해 두자.
기록한 것은 잊지 않게 잘 보이는 곳에 두어야 한다. 내가 늦게 챙기면 시공하려던 걸 못할 수도 있고, 시공팀을 다시 불러야 하거나 자재가 제 때 오지 않아서 비용이 늘 수도 있다. 반셀프 인테리어를 한다면 귀찮아도 체크리스트 관리를 꼼꼼히 해야 덜 고생한다.
현장을 확인하면 여러 의문이 생길 것이다. "원래 이렇게 시공되는 건가?", "생각과 다른데 바꿀 수 있나?", "이게 이렇게 되면 다음 공정에 영향을 줄텐데 알려줘야 하나?", "지금 보니 이걸 생각 못했었네. 물어봐도 되나?" 직접 감리해야 한다면 궁금한 건 모두 답을 찾는 게 안전하다. 시공팀에 직접 물어보거나 어딘가에서 정보를 찾아야 한다.
시공팀과 문제를 소통할 땐 실력 있는 분에게 조언을 얻는다 믿고 존중하며 소통하는 것을 추천한다. 체감상 더 자세히 답변해 주시고, 비용 없이 작업해 주실 확률도 높은 것 같다. 무례하거나 책임감 없는 시공팀을 만나는 게 걱정된다면, 섭외 전화 돌릴 때 표준계약서 쓸 수 있는지 물어보자.
나는 신혼집 반셀프 할 때 싱크대 가구업체, 타일업체 모두 A/S 해준다 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연락 안 되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이번엔 특수 자재(한살림 벽지, 패브릭 벽지, 엔지니어드 스톤) 빼곤 컨설팅 업체의 시공팀에 부탁드렸다. 업체와 연계된 시공팀을 섭외하면, 업체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잘 케어해 주시는 것 같다. 도기도 내가 자재 잘못 주문했는데 비용 안 받고 설치하러 한 번 더 와주셨고, 보조주방 싱크대 바닥에 내 과실로 물이 차서 목재가 뒤틀렸는데 무상수리해 주셨다.
이 글을 읽고도 반셀프 인테리어를 할 마음이 든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비용을 아끼면서 원하는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공정마다 묻고 챙길 게 생겨서 정신없겠지만 그만큼 더 마음에 드는 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