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24 에세이 99위, 그리고 추천사
책 쓰기는 정말 긴 호흡이었다. 어떨 때는 고통을 복기하는 느낌이었다. 자폐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과정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기억은 아주 선명했지만 감히 풀어서 이야기할 순 없었다. 아주 오랫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고 꾹꾹 눌러 담아 밀봉하고 또 가뒀다. 덜 아팠다. 글쓰기 시작했을 때 정원이 이야기는 짧은 호흡의 글도 버거워 한편 한편 조금씩 써나갈 뿐이었다.
퇴고는 가드닝이야기에 아이의 자폐 이야기를 더하는 과정이었다. 이미 써왔던 글이라지만, 전혀 결이 다른 글 두 뭉치를 자연스럽게 엮기 위해서는 하나하나 해체해야 했다.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알았다. 지금 나는 나를 위한 여정 위에 있다는 것을. 지난 시간을 상기하고 글로 써 내려가면서 스스로를 용서했고 지금 나의 삶을 받아들였다. 더 이상 감추지 않아도 될 만큼. 메일을 열었다. 임솔아 작가님의 답변이 왔다. 세 번째 피드백이었다.
이 원고는 1) 아이 이야기 2) 정원 가꾸는 이야기가 두 가지가 중심축이 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족 이야기나 선우님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이 새로 들어오고 있어요. 이번에는 선우님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들어왔더라고요. 사실 책의 색깔이나 완성도만을 고려한다면 가족 이야기나 그림 이야기 등의 이야기는 다른 책으로 쓰시는 것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 장애가 있는 아이를 돌보며 살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를 다각도로 말하는 것도 값진 일이 아닌가 하며 선우님의 원고에 설득이 되어버렸습니다. 무엇보다 그 심정이 왠지 너무 잘 이해가 되었어요. 원고를 읽으며 이런 방식으로 설득이 되는 건 참 드문 경우라고 저는 생각해요. 저는 이대로 가도 좋을 듯합니다.
툭. 눈물이 났다. 엄마의 삶. 아이를 낳고 꿈꾸었던 삶. 내가 이 터널을 어떻게 통과하고 싶은지 말하고 싶었다. 이만한 어려움에서 애쓰고 있다고 외치고 싶었다. 칭찬받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고 싶었다. 나 열심히 했어요. 나 이렇게 살았어요. 나 이만큼 해냈거든요!
자폐스펙트럼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사람 냄새가 그리운 삶이었다. 매 순간 무엇을 포기하는 과정이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과 자유는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삶은 단순했고 고요했으나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같이 하기로 했던 공저 프로젝트에서 혼자 그만두는 것은 무척 괴로웠다. 아니 외로웠다. 어렵사리 주어진 기회를 다 잡는 것은 사치였다.
브런치에 처음 글을 올릴 때는 누가 알아볼까 무서워 미로처럼 숨박꼭질 하듯 글을 썼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알아주길 바랬다. 내 이야기를 덜어내고, 가드닝과 정원이에 관한 기억들을 퍼즐 하듯 맞춰 나갔다. 기억은 만개의 조각으로 나뉘었고 다시 조립되었다. 하나하나 자리를 찾아갔다. 어느새 나는 글을 쓰면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행복했다. 책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문이었다. 문을 열고 싶었다. 나는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내 일, 내 소명, 내 삶을 여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는 10년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그 증거는 정원이 뿐이었다.
그래, 나의 흔적을 지우자. 원고를 열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지웠다. 이 책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으니까. 정원이에게 다시 초점을 맞추자. 한 챕터를 모두 지우고 리딩맘에 있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자. 그 리딩맘의 기억은 정말 특별했다. 나는 정원과 식물을 돌보고 기록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자. 정원사로.
나는 글을 쓰며 달리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무릎을 다쳐 달릴 수 없던 나였는데 말이다. 집중할 수 없는 날은 문장 단위로 자연스러운지 계속 고쳤다. 모든 기억을 꺼내두고 옷감을 짜듯 교차하며 다듬는 과정은 어려웠다. 정원이를 등교시키고 3시간 퇴고했다. 점심은 대충 커피로 때우고 하교를 갔다. 담임선생님의 피드백을 듣고 지원사에게 컨디션에 대한 전달을 했다. 아이의 눈을 보고 집에서 보자고 했다. 그리고 다시 2시간 퇴고했다. 저녁을 겨우 준비하면 아이를 본다. 잠들 때까진 글을 쓸 수 없었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또 2-3시까지 수정했다. 매일매일 같은 일과를 반복했다. 나는 달리고 있었다. 글 위에서, 그리고 길 위에서.
혼란스러웠던 퍼즐이 하나하나 맞춰졌다. 괴로울 수 있는 시간들이 도리어 행복했다. 보통의 삶이란 무엇일까. 천천히 하나하나 작은 것부터 이루다 보면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길이 없다 해도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면 그 자체로 의미 있지 않을까. 퇴고는 아이에 대해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던 지난날의 나를 발견하고 새롭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묻혔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고 있다. 덕분에 마지막 퇴고인데 글을 새로 쓰는 기분.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살아있었다. 무색 무미했던 세상이 조금씩 빛으로 물들었다.
멘토가 지정한 마감은 추석 전날이었다. 그즈음에는 일주일 전부터 3-4시까지 쓰고 7시에 일어나 정원이 등교시키고 쓰고 하교했다가 다시 또 쓰는 시간을 반복했다. 5시부터는 정원이 돌보고 재워야 하니. 5-11시까진 글쓰기 불가. 그러다 보니 밀려서 새벽 5시까지 쓰고 두 시간 눈을 붙이고 있었다. 쓰면 쓸수록 고쳐야 할 것이 보였다. 나를 지우면서 문장을 다듬고 또 새로운 챕터를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만하면 되었다지만 계속 고쳐야 했다. 원고 외에는 아무것도 읽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을까 싶어서.
최종 원고제출일은 10월 10일이다. 사실상 추석 연휴 다음날이라 멘토작가님과 약속한 마감날은 10월 5일이었다. 정원이와 나는 이제 명절에 서울에 올라가지 않는다. 장거리 이동이 아이에게 리스크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아직 퇴고할 것은 제법 많이 남아 있었다. 10월 4일 밤, 아이는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39도였다. “애가 열나서 마감이 하루 늦어집니다.”라고 문자를 보내도 되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너무 공교롭게 들려서 결국 입을 떼지 못했다. 너무 핑계 같으니까.
10월 5일은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정원이 아빠는 10월 5일 아침에 올라가기로 되어 있었다. 이미 해열제를 먹이며 정원이 열감기 간호를 새벽 여섯 시까지 한 나는 3시간 눈을 붙였다. 9시에 일어나니 아이아빠는 서울 본가에 올라갈 준비 중이었다. 틈틈이 수정하면서 아이를 돌보았다. 아이가 끼니를 먹지 않는다. 정원이는 몸이 좀 불편하면 곡기부터 끊는다. 결국 그날부터 내리 7일간 아이는 또 굶었다. 평소 같으면 기분전환 시켜줄 텐데, 빗길 운전도 난감하고 병원 다녀오기엔 체력 부족이었다. 비그친 저녁에 살살 드라이브만 시켜서 기분 전환 시키고 9시에 재웠다 잠들고 난 뒤 겨우겨우 수정을 마무리하고 11시 59분에 메일을 제출했다. 나도 잠들었다. 1시간 뒤에 정원이가 깨서 8시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아이가 깨면 잠들 수 없다. 교대할 사람도 없었다. 결국 꼬박 밤을 새우니 귓가가 어지러웠다. 조금이라도 졸면 아이가 날 흔들었다. 아이가 열이 있다. 다시 해열제를 먹였다. 병원에 운전해서 갈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로 다시 아이아빠가 서울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겨우 교대하고 죽은 듯이 내리 4시간을 자고 나서야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를 다녀왔다. 아이는 목이 부었었나 보다. 병원과 약은 내가 꼭 동행해야만 했다. 어찌 되었든 마지막 퇴고가 끝났다. 이제 피드백을 기다리자.
어제 2월 4위 아주 잠깐이지만 yes24 에세이 전체 종합 99위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힘들면 힘든 대로 정직하게 쓰겠습니다. 힘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실 실감이 잘 안 나요. 교보문고와 알라딘에 남겨주신 후기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넷 링크는 하단과 같습니다. 모쪼록 이 이야기가 마음에 닿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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