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을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기로 한 날의 기록
낙엽의 바삭함은 아침의 이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바삭하게 말려 주는 햇볕으로부터 온다.
바삭한 낙엽을 밟고, 그것이 부서지는 소리를 듣는 것은 가을에만 가능한 낭만이다.
그리고 이제, 낙엽이 다 떨어지고 겨울로 바뀌는 길목에 서 있다.
쌀쌀해진 바람과 낮아지는 하늘, 늘어나는 구름이 그 변화를 증명한다.
거리에서는 패딩이 하나둘 등장하고, 손에는 따뜻한 핫팩이 들려 있으며, 목도리 끝에서는 익숙한 캐럴이 흘러나온다.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잠시 설렘을 느꼈다.
그 설렘의 정체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한 살 더 먹는다는 설렘인지,
무언가 더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의 설렘인지,
올해를 나름 잘 살아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혹은 새로운 한 해를 다시 맞이한다는 기대 때문인지.
문득, 한 해의 시작은 1월이 아니라 겨울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의 감정이 이렇게 또렷하게 느껴지는 계절은 겨울이 유일하니까.
오늘은 소개팅의 에프터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상대가 나를 많이 좋아한다는 것이 느껴져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고.”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감사함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좋다고.
밥을 사줄 때도, 차 문을 열어줄 때도, 물을 건네줄 때도
나는 늘 “감사합니다”를 빠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사이,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누구에게나 똑같다.
심지어 아침에 나를 깨워주는 시리에게도… 나는 “고마워”라고 말한다.
그렇게 쌓인 작은 감사들이 결국 내 삶의 행운을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에 솔직해지고, 느끼는 기분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마음속의 따뜻함을 숨기지 않자
놀랍게도 내 주변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핫팩의 온기를 나누며 웃을 수 있는 사람,
지나가는 낙엽 하나에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
그런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중고등학생 때의 나는 낙엽을 보고 웃지 못했다.
그저 밟히는 소리가 귀에 먼지처럼 느껴졌고,
세상은 늘 무겁고 경직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낙엽이 떨어지기만 해도 까르르 웃는다.
그건 내가 여유를 갖기 시작했고, 오늘의 순간들을 더 깊게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감사함과 안정감은 함께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나는, 감사함이 있었기에 안정감이 만들어지고,
안정감이 있었기에 더 사소한 것에도 감사를 느낄 수 있었다는 걸 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깨닫는 순간,
우리 세계에는 아주 작은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그 균열이 바로 혁명이고, 창조다.
오늘 엄마와 저녁을 먹었다.
엄마는 김밥을 유난히 좋아하시지만,
내가 밥을 먹자고 하자 엄마는 기꺼이 김밥 대신 카레집을 선택하셨다.
당연한 일이 아니다.
나는 그 속에서 사랑을 보았고,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정(情)이라 불리는 행위조차도,
베풂이라 부르는 따뜻함도,
누군가의 행동 뒤에 숨은 마음도
모두 결국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 같다.
사소한 것을 사소하게 지나치지 않는 것,
고마움을 말로 표현하는 것,
작은 따뜻함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요즘 배우는 삶의 기술이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이 기술이 내 삶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