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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Sep 29. 2023

이제 아메리카노 주세요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스물한 번째

5시 40분 알람이 울리지 마자 눈이 떠졌다. 피곤하지만 이제 눈을 뜨는 일은 어렵지 않다. 돌돌이로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이불을 곱게 접어 요위에 올려놓는다. 밖으로 나와 테이블에 앉아 사과 한 개를 깎아 먹는다.


여기까지는 이제 어렵지 않다. 크게 감정의 기복이 있어도 이 정도까지는 어려움 없이 매일 하고 있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화장품을 바르고 거울을 바라본다. 몇 초 이상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웠던 내 얼굴을 조금은 장시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머리에 뭔가 발라야겠다. 언제 산 건지 기억이 없지만 욕실장에서 머리에 뿌리는 스프레이와 무스 등등을 찾았다. 뭘 할까 고민을 하다가 스프레이 정도로 타협을 보았다. 밖에 나오니 비가 솔솔 내리고 있었다. 스프레이정도로 타협을 보기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오전 내내 비가 내렸다. 커피라도 마실까 해서 탕비실에 갔다. 몇몇 동료들이 탕비실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믹스 커피를 타고 있는데 동료가 날 보더니 바쁘지 않으면 간식 먹으면서 얘기나 하고 가라고 했다. 테이블에는 과자들이 놓여 있었다. 몇몇 개는 내가 아주 좋아했던 옛날 과자여서 나도 모르게 자리에 앉았다. 과자도 달고 믹스커피도 달아서 영 궁합에 안 맞았지만 단 것이 당겼는지 손은 계속 과자를 집어 먹고 있었다.


"그 과자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그 사람은 날 보고 웃으며 얘기했다. 순간 시선이 집중돼서 깜짝 놀랐지만 손을 멈추면 더 민망할 것 같아 웃고 말았다. 나만 믹스커피를 먹고 있고 다들 어디서 샀는지 아메리카노를 먹고 있었다. 이제 믹스 커피의 시대는 끝난 건가 생각하며 한 모금 마시자 아메리카노가 간절해졌다.


믹스커피가 없던 시절 대부분 사무실의 신입들은 커피를 타는 것도 업무의 하나였다. 커피, 프림, 설탕의 비율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한데 신입시절에 난 커피를 잘 탄다고 칭찬을 자주 받곤 했다. 사소한 일도 깊이 여러 번 생각하고 타인의 기분에 민감했던지라 각각의 커피취향을 잘 기억해서 거기에 맞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대리님은 커피 둘, 프림 하나, 설탕 둘, 과장님은 커피 하나 프림 둘 설탕 둘 등등 머릿속에 외우고 다녔고 언제쯤 커피를 타갈지도 항상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했다. 그런데 커피믹스가 보편화되고 나서는 크게 기술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믹스커피를 뜨거워진 물에 넣기만 하면 된다. 대부분 종이컵에 담아 가기 때문에 물의 양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질 일도 없다.


요즘은 탕비실에 믹스커피도 구비하고 있지만 대부분 카페에서 커피를 사 먹거나 사무실에 캡슐커피머신을 두고 커피를 내려 먹는다. 이렇게 먹는 커피의 대부분은 아메리카노이다. 처음 아메리카노를 먹었을 때는 너무 써서 설탕을 타서 먹었다. 잠 깨려고 먹는 것이지 맛있어서 사 먹지는 않았다. 커피를 자주 먹던 초기에는 달달한 맛이 좋아 라떼 등 시럽이 잔뜩 들어간 것들을 먹곤 했지만 어느 순간 단순한 아메리카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계속 아메리카노를 먹다 보니 쓴 맛에 대해 내성이 생겼을뿐더러 그 특유의 향기가 점점 좋아지면서 카페마다 아메리카노 맛도 다르다는 것을 알 지경에 다다랐다. 하루에도 몇 잔을 먹는 커피가 있기에 수많은 야근과 이른 새벽출근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유럽에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출장지가 프랑스에서 가까운 벨기에여서 어떻게든 시간을 내 파리를 가기로 마음먹었었다. 어렸을 때 샹송을 좋아했던 나에게 파리는 낭만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였다. 당연히 쎄느 강변의 테라스 카페에서 커피잔을 들고 있는 파리지앙은 나의 워너비중 하나였다. 출장 중에 겨우 시간을 내 고속열차를 타고 파리로 갔다. 낡은 기차역에 도착해서 허름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었지만 추례하다기보다는 운치 있게 느껴졌다. 더욱이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비 내리는 파리였다.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퐁네프 다리를 천천히 걸어 건너편에 있는 카페에 갔다. 카페문을 열고 들어가서 영어로 주문을 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를 안 한다고 하던데 정말인가 싶었다. 밥은 됐고 커피를 마시고 싶어 아이스 아메리카노 달라고 했더니 떨떠름한 얼굴로 날 쳐다보는 것이었다. 아메리카노?라고 질문반 주문반으로 여러 번 말해도 한참을 쳐다보기만 하는 것이었다. 난 메뉴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디에도 아메리카노라는 메뉴가 없었다. 여긴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였다. 난 매일 몇 잔을 마시면서도 아메리카노의 아메리카가 미국의 이름인 아메리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믹스커피 같은 것이 한국식 커피이고 시꺼먼 먹물 같은 아메리카노가 당연히 서양의 커피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서양인들은 당연히 아메리카노라고, 에스프레소나 비엔나커피, 라떼등이 있지만 근간은 아메리카노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아메리카노는 이방인의 음료였다. 그들에게 아메리카노는 커피의 향과 맛을 느낄 수 없게 물을 타버린 음료라는 것을 아주나중에 알게 되었다.


결국 그날 나는 콜라를 주문해 버렸다. 비 오는 파리의 어느 카페에서 난 코카콜라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쎄느 강을 바라보게 되었다. 많은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온 파리였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그렇게 되었는지 당시에는 알 길이 없었다. 어떤 일을 준비할 때 시뮬레이션을 많이 하는 편인데 막상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당황해서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향의 결정을 내리곤 한다. 파리에서의 시뮬레이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으면 핫아메리카노를 먹어야겠다는 정도였을 것이다. 무언가를 처음 실행하기 전에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하며 시뮬레이션을 해보곤 하지만 그 시뮬레이션의 범위는 고작 내가 겪어본 일들의 복기에 불과하고 새로운 일은 내가 경험한 범위밖에 있기에 새로운 일인 것이라는 것을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인생 2회 차가 아니고서야 살면서 맞닥뜨리는 일들은 매번 처음 겪는 일이니 아무리 고민해 봐야 인생은 시뮬레이션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모든 사소한 일들을 고민했다. 아침에 신을 양말의 두께나 구두의 종류, 점심 먹을 식당의 메뉴, 계란 프라이의 익힘 정도, 짜장면과 간짜장, 거실조명의 밝기, 출퇴근 때 들을 음악의 선곡, 지하철에의 나의 위치, 사람들과 만날 때 할 인사 등등 수많은 일을 매번 신중하게 시뮬레이션해 가며 결정했다. 그 대부분의 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고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나면 알게 된다. 얼마나 많은 무의미한 시뮬레이션들이 불안으로 내 영혼을 무너 뜨렸을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요즘은 시뮬레이션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시물레이션을 하면 할수록 부정적인 생각만 많아지고 결국 하기 싫어지기 때문이다. 커피숍을 갈 때도 전처럼 뭘 먹을지 고민하지 않는다. 단 한마디만 준비해서 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이야기가 나와버렸고 사람들은 순간 침묵하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사람은 배를 잡고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이상하게 그 웃음이 싫지 않아 나도 따라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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