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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Mar 20. 2024

우려내면 없어지는 마음, 철관음차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예순여덟 번째

예전에 중국을 자주 왔다 갔다 할 때 중국인 동료가 선물을 준 적이 있었다. 그들의 월급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나였기에 그런 고가의 물건을 받기가 너무 미안해서 몇 번이나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속 주고 싶다고 해서 결국 받고 말았다. 크기도 크고 들고 있기도 무거운 그 걸 들고 낯선 중국의 어느 도시를 몇 시간이나 계속 돌아다녀야 했다.


솔직하고 순박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어려운 삶이었지만 자존감이 있었고 긍지를 잃지 않았다. 내가 몇 번 내어준, 그것도 회사카드로 산 식사들에 대해 항상 미안해하곤 했다, 아마도 그런 이유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었더라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좋은 것을 좋게만 기억하기에도 벅찬 인생이다.


찬장서랍에서 그 도자기 주전자와 찻잔 세트를 꺼냈다. 가끔 꺼내어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잘 말려서 넣어놔서 여전히 좋은 느낌의 주전자와 찻잔 세트이다. 도자기로 이루어진 주전자는 손잡이까지 전부 도자기였는데 손잡이는 대나무로 돌돌 말려져 있어 자주 사용한 부분은 반들반들 해졌다. 주전자 내부에는 찻잎을 거르는 망이 도자기로 만들어서 쏙 들어가 있다. 요즘 찻주전자들의 거름망은 대부분 쇠붙이로 되어 있다.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라던가 그런 것이겠지만 미묘하게 쇠맛이 나는 것 같다. 기분 탓이다. 하지만 그래서 도자기로 된 거름망이 있는 이 주전자를 난 소중히 다루어 사용했다


며칠 전 퇴근하고 나도 모르게 대형 몰에 간 적이 있었다. 어쩌다 거기에 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히 이방인이 되어 계속 걸을 수 있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다 차 전문점을 보았다. 그 비싼 자리에서 중국산 차를 파는 곳이라니 신기하다 생각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두세 평은 될까 싶은 그 찻집은 유명 프랜차이즈 가게 사이에 다른 세계에서 온 양 어색하게 끼어있었다. 나의 멈춘 걸음을 느낀 가게주인은 잠깐 멈칫했지만 다시 자기 할 일을 했다. 좋다. 나를 보고 웃거나 인사를 했으면 바로 돌아서 갈 뻔했으니까.


중국에서는 항상 사무실에 차가 있어서 무슨 차를 마시는지 몰랐다. 한국에 와서야 그게 철관음차, 우롱차임을 알았다. 대부분 붉은색 상자나 봉지에 들어있어 구분하기가 쉽다. 한자로 철관음이라고 쓰여있었다.

물처럼 마시던 거라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한국에서 구해보니 전혀 저렴하지가 않았다. 작은 한 봉지에 몇만 원이나 한다.


당장 필요한 게 아니다. 그래도 사고 싶었다. 나를 위해 사치를 부리고 싶었다. 지금 당장 필요도 없고, 없다고 죽지도 않는 뭔가를 또 사고 싶었다. 남들이 쳐다도 보지 않는 뭔가를 비싼 돈을 주고 사고 싶었다. 문득 요즘 자주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았지만 이미 값을 지불하고 난 가게를 나왔다.


집에 와서 사온 차봉지를 가위로 잘라 열어보았다. 진한 녹색의 말린 찻잎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전기포트에 올라간 물이 적당히 식기를 기다렸다. 너무 뜨거운 물로 첫 잔을 만들면 안 된다고 했었다. 내게 쓸모 있는 기억은 전부 날 떠난 사람들에게서 왔다. 어떤 인생이 그렇지 않을까.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는 모르지만 항상 적당히 기다리라고 했다. 찻잎을 주전자의 거름망에 넣고 기다리다가 그냥 이때쯤인가 싶어 전기포트를 가져와서 물을 부었다. 잠시 후 첫 물을 따라냈다.


첫물은 항상 따라내라고 했다. 너무 쓰고 맛이 없다고도 했고, 농약이 묻어있으니 소독하는 거라고 했고, 누군가는 찻잔과 주전자가 더러우니 설거지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다양한 이유를 들어 나도 항상 첫 찻물은 따라내서 버렸다.


두 번째 물을 넣고 잠시 기다렸다가 찻잔에 따랐다. 놋색끼가 살짝 도는 노르스름한 차가 주전자에서 나왔다. 두 번째까지 우려내니 차 향이 집안에 가득하다. 이 향을 무슨 향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과일향이 난다고 했다. 한국인 팀장은 꽃잎향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 차를 마실 때마다 진한 녹색의 호수향이 났었다. 그 호수 물을 마셔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 향과 맛이  비슷할 것 같았다.


물에 불은 풀잎향이 나는 씁쓸한 차의 맛.


처음 맛은 진하지만 여러 번 우려내서 먹으면 점점 옅어진다. 네 번째 우려서 마실 때에는 집안에 있는 향보다도 적은 향이 찻잔 속에 있는 듯했다.


기억이, 추억이, 즐거움이, 슬픔이, 혐오가, 분노가, 쇠함이, 점점 옅어진다.


매일매일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데 희미한 세계로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 뿌연 안개 같은 기억들이 나를 그 속에 가두고 있었다.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주변을 떠다니며 칼날처럼 나의 살갗들을 스쳐지나다녔다. 도망치고 싶었다. 이곳만 아니면 될 거라 생각했다. 눈을 감으면 세상은 없어지고 난 소멸할 것 같았다. 희미하게, 계속 희미해져서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마음이 찻잔 속의 차향기처럼 옅어지고 있다. 우려낼수록 찻잔밖으로 흘러나오는 좋은 기억들이 현실을 계속 밀어내고 마침내 옅어져서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해진다. 그래, 오늘도 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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