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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Nov 19. 2019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나'를 찾아서

'경험 추구'와 '멀티 페르소나', 시대(時代)를 노래한 윤종신

“좀 더 꿈꾸겠어
생각보다 훨씬 해 볼 게 많아
바람 맨 앞에서
숨지 말아야 해
겪는 게 이득이래“


2019년 6월에 발표된, 가수 윤종신의 곡 ‘늦바람’ 가사 중 일부이다.


겪는 게 이득이래


그는 ‘겪는게 이득이래’라는 이 노래를 남기고, 그동안 그가 겪지 못했던 ‘다른 삶’을 겪으러 태평양을 건넜다. ‘소유’의 관점으로 접근했다면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다. 그는 이미 가수로서도 예능인으로서도 정점에 서 있는 터였다. 이미 이루어놓은 터 위에서 이제는 누리기만 하더라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그는 작사한 노래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무 오래 머문 것일까
여긴 정말 머물 곳일까
여기서 보고 느낀 그 모든 게
내게 최선이었을까
그는 ‘겪는게 이득이래’라는 이 노래를 남기고, 그동안 그가 겪지 못했던 ‘다른 삶’을 겪으러 태평양을 건넜다.


'윤종신'답지 않았던 '팥빙수'의 기억


나는 아직 그의 노래 ‘팥빙수’가 나왔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그는 015B의 객원가수로 데뷔했다. 변성기를 겪지 않은 것 같은 앳되고 가녀린 미성으로 그는 주로 사랑과 이별을 노래했다. 사랑했던 사람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이별 감성이 그의 노래에 흐르는 주된 정서였다. 그런 노래가 차곡차곡 쌓여 그만의 영역이 생기고, 안정된 팬덤이 생겼을 때 쯤, 느닷 없이 ‘팥빙수’가 나온 것이다. 무겁고 가슴 시린 노래를 기대했던 팬들에게도 ‘이 노래는 뭐야?’라는 배신감이 밀려왔다. 우리가 알던 윤종신이 아니었다. 노래는 지나치게 가벼웠고, 가사는 가슴 시린 내용이 아니라 그저 ‘팥빙수’를 만드는 레시피였다.

나는 아직 그의 노래 ‘팥빙수’가 나왔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탈출


하지만 그의 새로운 시도는 그가 팬덤 안에서 탈출하여 더 넓은 스펙트럼의 대중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안에는 슬픈 이별을 노래하는 섬세한 정서 뿐 아니라 사실은 대중적인 코믹 정서와 깐족 정서가 내재되어 있었을 터였다. ‘윤종신은 이런 가수’라는 상식을 그는 스스로 깬 셈이었고, ‘팥빙수’는 그의 노래의 지형이 바뀔 뿐 아니라 그가 ‘예능인’으로 발을 떼는 시발점이었던 셈이다. ‘팥빙수’가 나온 해가 2001년이었고, 윤종신이 MBC 시트콤에 교수님으로 나왔던 때가 2003년이니 그럴 듯한 설명 아니겠는가.


멀티 페르소나(Multi Persona)


윤종신은 감성 발라드 가수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진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또 하나의 페르소나(persona)를 장착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면 또 다른 자신의 재능을 선보였다. ‘팥빙수’ 후 18년이 지난 2019년의 윤종신은 그 때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한 기획사의 대표로, 신진 가수들을 발굴하는 기획자로, 여전히 슬픈 이별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로, 깐족과 익살을 필살로 하는 예능인으로 대중 옆을 지켰다.


'익숙하지 않은 것'의 불편함


나는 윤종신의 노래 중에서 ‘텅빈 거리에서’, ‘너의 결혼식’, ‘오래전 그날’을 좋아하던 90년대 소년이었다. ‘팥빙수’가 발매된 2001년에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그의 타이틀은 실망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던 이별 노래하던 가수를 대중들에게 빼앗긴 느낌이 들었다. 90년대의 그의 노래가 가요톱텐에서 30~50위 선에서 맴돌 때, 나는 대중들의 일반적인 선호와는 차별화된 나의 감성을 확인이라도 하듯 나름 뿌듯해하곤 했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서 그가 더 유명해지고, TV출연이 잦아질수록 나의 ‘가수 윤종신’에 대한 팬심은 조금씩 사그러들었던 것 같다.

나는 윤종신의 노래 중에서 ‘텅빈 거리에서’, ‘너의 결혼식’, ‘오래전 그날’을 좋아하던 90년대 소년이었다.


나에게도 있는 '다중 자아'의 발견


그를 다시 이해하게 된 것은 20대를 지나오면서부터였다. 나 역시 진지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달까. 사회적 맥락 안에 들어온 나는 늘상 진지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아갔다. 마치 투수가 똑같은 구질로는 타자를 압도할 수 없듯이 사회적 맥락 안에서는 진지함 뿐만 아니라 유머와 위트, 재치와 같은 역량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사람을 웃기는 능력이 어느 정도 내재되어 있으며, 그것이 꽤나 보람 있는 영역이라는 것을 알아가게 된 것이다.

마치 투수가 똑같은 구질로는 타자를 압도할 수 없듯이 사회적 맥락 안에서는 진지함 뿐만 아니라 유머와 위트, 재치와 같은 역량들이 필요했다.


'멀티 페르소나(Multi Persona)'에 대한 생각의 변화들


이렇듯 한 사람 안에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다.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만났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한 인물에 대한 컨셉을 갖는다. 따라서 똑같은 사람에게도 여러 평판이 존재할 수 있다. 회사에서 만난 이 부장님은 굉장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일 수 있지만, 가정에서 아빠로 만난 이 부장님은 한 없이 다정다감할 수 있고, 드럼 동호회에서 만난 이 부장님은 에너지와 사회적 반항심이 넘치는 사람일 수 있다.


‘장인 정신’이 강조되던 예전 사회에서는 수많은 자신의 정체성 중에서 가장 주된 정체성 하나만 강조하면서 살면 되었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했고, 가수는 가수다워야 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하나만 잘 하는 ‘장인’들은 서서히 세상 무대 뒤 편으로 사라져가고,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의 시대가 되었다. 한 분야의 지식의 깊이는 다소 미흡하더라도 주어진 상황과 문제에 따라 여러 분야의 지식을 적절하게 인출하여 접목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가 필요한 시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2020년, 김난도 교수는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한 명의 인간 안에도 만 가지 이상의 페르소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결국 소비자를 읽어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도 고객 1명을 1명으로만 여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2020년, 김난도 교수는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이제는 필자도 누군가에게 특정한 모습만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기대하는 ‘나’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누군가는 내 글에서 아빠로서의 따뜻함을, 누군가는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관점을, 또 다른 누군가는 영화나 방송에 대한 문화 평론가적인 관점을 기대할 수 있다. 누구든 환영이다. 그 분들의 다양한 기대를 통해서 나는 한층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겪는 것에 '늦바람'은 없다


90년대, 슬픈 이별의 노래를 부르던 윤종신 씨는 뉴 밀레니엄을 지나며 깐족거리는 예능인의 페르소나를 장착했다. 그리고 2019년, 그는 또 다른 경험과 자아를 찾기 위해 떠났다. ‘겪는 게 이득’이라는 월간 윤종신의 노래 가사는 윤종신 본인의 인생과 함께 시대를 노래한 셈이다. 2019년의 사람들은 지원서나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더 넣기 위해 하던 경쟁을 위한 경험 말고,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진짜 경험’을 찾아 떠난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겪어지는 그런 경험 말고, 스스로 찾아가는 살아있는 경험 말이다.


그렇게 겪기위해 살았던 분이 가까이에도 계셨다. 무려 20년간 한가지 사업을 해오던 사업체가 한창일 때, 돌연 배움을 위해 이십대들과 함께 캠퍼스를 누비던 사람. 졸업 후에 훌쩍 해외로 떠난 사람. 그 분은 다름 아닌 장인 어른이었다. 그 곳에서의 '다른 삶'을 사는 동안 그 분의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아버님은 더 이상 소유를 위한 일들에 마음을 두지 않게 되었고, 귀국 후에는 고급세단과 정원이 달려 있던 큰 집을 정리했다. 그러시고는 늘날 우리가 '미니멀 라이프'라고 부르게  이프 스타일을 자연스레 살아내셨다. 그렇게 '또 다른 자신'을 만난 아버님은 2019년에도 또 다른 삶을 늘 고민하며 살아가신다.


50대에 새로운 경험을 하겠다고 떠난 일면식도 없는 인생 선배를 바라보며, 그리고 나보다도 더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추구하고 계신 아버님을 바라보며, 30대의 나는 스스로 묻는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누구'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그것을 위해 나는 어떤 것들을 '겪을' 것인가?


50대에 새로운 경험을 하겠다고 떠난 일면식도 없는 인생 선배를 바라보며, 30대의 나는 스스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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