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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pr 24. 2019

'벚꽃'이 흩날려야만 '봄'인가   

나는 너의 '봄'이 될 수 있을까

당신의 봄에 '벚꽃'이란?


언젠가부터 벚꽃은 봄의 상징이 되었다. 마치 연말의 구세군 냄비나 크리스마스에 기다리는 하얀 눈처럼 우리의 봄 추억은 흩날리는 벚꽃으로 채워지고 있는 듯 하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은 우리의 봄 추억을 통일시키는 대표적인 봄 캐롤로 자리잡았다. 


풋풋한 대학생일 때 함께 했던 '윤중로' 벚꽃


대학 시절에는 이 맘 때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사람들로 북적이는 여의도 윤중로를 걸었었다. 그 곳은 '사람 반, 꽃 반'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선유도 공원에서 다 큰 대학생들끼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했던 기억도 있다. 함께 울고 웃던 그 사람들 중에 '아내'도 있었다. 유난히 하얀 피부 때문인지 봄에 햇살이 비칠 때 함께 걷고 있다가 그녀의 옆 모습을 바라보면 눈이 부신 느낌이었다. 


사회 초년생이 되어 맞이한 '금산사'의 벚꽃


2009년 겨울, 이십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짧고 굵었던 사기업에서의 생활을 뒤로 하고, 아무런 연고 없는 ‘전주’로 내려왔다. 그렇게 나는 전주의 봄을 맞이했다. 내 소중한 일터인 캠퍼스에도, 천변에도, 벛꽃들이 흩날렸다. 

그렇게 나는 전주의 봄을 맞이했다. 내 소중한 일터인 캠퍼스에도, 천변에도, 벛꽃들이 흩날렸다.


그리고 2011년 봄, 하루는 부서 선생님들의 제안으로 드라이브를 떠났다. 운전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주인 때문에 시동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수동 중고차에 조교 선생님들을 태우고, 나는 진땀을 흘리며 드라이브에 나섰다. 그렇게 우리 일행은 차량 세 대에 몸을 싣고 전주에서 중인리를 거쳐서 금산사로 가는 길을 달렸다. 벚꽃보다 사람이 더 많은 여의도 벚꽃에 익숙하던 나는 그 날, 벛꽃이 겨울에 내리는 함박눈처럼 아름답게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벚꽃 나무가 양쪽에 늘어서 있으면 그것이 아늑하고 고즈넉한 터널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보았다. 감수성이 아직 살아있는 이십대 소녀들의 연이은 탄성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벚꽃의 절정 시기를 잘 맞추어서 그런건지 그 때는 알 수 없었다. 내 차에 탔던 동료들의 탄성은 너나할 것 없이 자연스러웠다. 그것은 겨울에 내리는 함박 눈을 두 손을 내밀어 맞이하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었다. 나는 탄성을 내지는 않았지만 그 소녀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1차 시도


2012년 가을, 나는 아내와 결혼했다. 아내는 나에게 봄과 같은 존재였다. 겨우내 움츠려있던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듯이, 비가 촉촉이 내린 뒤에 녹음이 짙어지듯이, 아내와 함께 시작한 나의 삶에는 생기가 돌았다. 봄과 같은 아내와 처음 맞는 그 봄에 나는 부서 선생님들과 함께 보았던 그 아름다운 풍경을 아내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전주 시내의 천변에는 여지 없이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당신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드라이브 한 번 할까요?
우와~ 그래요! 좋아요!


그렇게 2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능숙해진 운전 실력으로 김제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우리는 그렇게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곧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할 수 밖에 없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우리를 애처롭게 맞이하고 있었다.


여보, 여기에 벚꽃들이 있다고 상상해봐요. 여기가 내가 말했던 벚꽃 터널이에요.


우리의 드라이브는 안타깝게도 점점 '풍경'보다 '상상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었다. 



2, 3, 4, 5차 시도


나는 그 풍경을 잊지 못하고, 그 후로도 아내와 벚꽃이 만개한 주말이면 금산사를 찾았다. 하지만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기는커녕, 제대로 피어있지도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런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사이에 우리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왕자님과 공주님이 차례대로 찾아왔다.      

결혼 7년차를 맞은 올해 봄에도 나는 아내를 데리고 금산사를 향했다. 나는 7년째 양치기 소년이었다.  

  

여보가 말해주었던 벚꽃눈, 저도 함께 보고 싶어요~
이번에는 정말 믿어봐요. 시내 벚꽃과는 정말 느낌이 다르다니깐!     


사찰이 있는 곳이다 보니 지대가 높고, 일반적인 시내와는 일조량의 차이가 있으므로 일반적인 개화 시기와는 다를 수 밖에 없는 그 곳의 개화 시기. 벚꽃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금새 다 떨어진다. 우리를 위해 친절하게 주말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런 희소성에서 비롯된 애틋함이 있기에 사람들은 봄이 되면 줄을 지어 벚꽃 놀이를 하는지도...


6차 시도


그렇다고 7년째 양치기 소년 노릇만 할 수는 없었다. 아내는 까페에 올라온 댓글을 통해서, 나는 금산사 주변에 거주하는 동료에게 정보를 받아 어느 정도 정확한 시기를 예상할 수 있었다. 목요일이 만개 시기로 예상되었지만 그 때는 시간을 낼 수가 없어 그 주의 일요일 오후에 우리는 6차 시도를 감행했다. 다섯 살짜리 아들과 두 살 딸도 함께였다. 

 7년을 기다린 보람이 있나요?
우와~ 정말 예뻐요! 사랑스러운 풍경이네요. 고마워요~

    

7년째 뜸을 들인 금산사 벚꽃은 우리에게 수줍게 모습을 내밀었다. 함박눈처럼 내리지는 않았지만 싸리눈처럼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다. 아들은 카시트에서, 딸은 아내의 품에서 잠들었다. 우리는 선루프를 열고, 머리 위로 반짝이는 벚꽃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선루프를 열고, 머리 위로 반짝이는 벚꽃들을 바라보았다.


금산사를 찍고 돌아오는 길에 두 아이는 약속이라도 한 듯, 눈을 떴다. 봄 같은 아내의 품 안에서 자란 아들은 모태 로맨티스트답게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따스하게 반응했다.   

  

아빠, 엄마, 벚꽃을 보았더니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날 것 같아요.
하나님, 이렇게 예쁜 보물을 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너의 '봄'이 될 수 있을까


벚꽃이 흩날리든, 눈처럼 내리든, 혹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든

나의 옆에는 늘 봄과 같은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꽃보다 벅찬 감동이 올라왔다.

벚꽃은 시기를 맞추어야 겨우 만날 수 있지만

여름이 와도, 가을이 와도, 혹독히 추운 겨울이 와도 나는 늘 봄과 같을 것이다. 

7년째 반복되는 허풍에도 늘 웃으며 길을 따라나서 주었던 아내,

우리의 차가 힘겹게 굴러가든, 부드럽게 나아가든,

눈에 보이는 풍경이 어떠하든, 돌아오는 길에 무엇을 먹든, 무엇을 마시든,

그것과 상관 없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이,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이 행복임을 늘 이야기 해 주었던 그녀 덕분에 

나는 사실 늘 봄이었다. 


마음의 봄과 눈 앞의 벚꽃이 일치하는 경험이 새로울 뿐.  

벚꽃 터널을 가로질러 구비구비 길을 돌아 내려오며 나는 마음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그녀에게 온기와 생기를 선사하겠노라고, 

치열하고 고민 많은 그녀의 삶 속에서 편안한 휴식 같은 사람이 되어주겠노라고, 

이제는 내가 그녀의 봄이 되어주겠노라고. 


이전 09화 '딸이 더 예쁘죠?'라는 질문을 맞이하는 아빠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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