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프 크래프터 Dec 23. 2023

말로만 미니멀리스트, 아이가 생기고 실천합니다



1. 아기 침대를 나눔 받은 날, 정신을 차렸다.


"여보, 우리 아기 침대 받으러 가자!"

토요일 오후, 글을 쓰다가 잠시 쉬려고 거실에 나왔더니 아내가 들뜬 마음으로 하는 말


"아기 침대? 우리 아직 출산하려면 5개월도 더 남았는데, 벌써 구매하는 거야?"


"아니, 이거 무료 나눔이야. 상태도 좋고, 우리 집이랑 잘 어울리는 색깔이라서. 잡아야 해!"


출산을 준비한답시고 나름대로 운동도 하고 육아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아이를 위한 물품은 생각하지 않았구나.


아내의 리더십을 따라 곧바로 차를 몰고 나눔 장소로 찾아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눈에 들어온

흰색 원목의 튼튼해 보이는 아기 침대.


조금 낡긴 했지만, 잘 사용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눔 해주는 분께서 드라이버를 빌려주신 덕분에 잘 분해해서 집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드디어 아기 물품이 하나 생겼구나. 잘 닦아서 일단 베란다에 놓았는데, 은근히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군?


매번 건조대에 빨래를 널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지금 접어둔 아기 침대 하나로도 이렇게 공간을 차지하는데, 다른 물건들이 들어오면? 안 되겠다. 당장 지금 가진 물건부터 정리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2. 말로만 미니멀리스트


아내와 나는 소비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벌이가 크지 않아서도 그렇겠지만, 애초에 둘 다 물욕이 없는 것 같다. 서로 자칭 미니멀리스트라고 할 정도로, 집안에 물건을 들이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집안을 둘러보면, 미니멀리스트의 태도와 다르게 잘 정리된 느낌은 아니다. 안 쓰는 물건이 보이기도 하고, 정작 필요할 때는 원하는 물건을 찾기도 어려울 때가 종종 있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일 것이다.


한 사람의 살림이 두 사람으로 늘어나면서 집 전반을 계획해서 정리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기 전, 각자 나름의 정리 방식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명이 하나의 공간으로 들어는 과정에 집안의 배치나 물건의 위치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계속 정리되지 않은 채로 쌓인 구역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더 큰 문제는 잘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안 쓰는 물건은 생기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쓸모가 없어진 것도 있고, 누군가에게 받았지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인 경우도 있다. 물건을 들이지 않는 만큼, 물건을 내보내야 진정한 미니멀리스트가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옷정리. 언젠가 입겠지 하면서 쌓아둔 옷이 상당히 많더라. 2년 이상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을 과감하게 처분했다.


옷가지를 꺼내면서 안 쓰던 물건들도 눈에 띄었다. 당근으로 팔 수 있는 물건은 팔고, 나머지는 모두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했다. 3박스씩 세 번, 총 9박스가 우리 집에서 나왔다.


버리기를 미뤄왔던 물건들도 처분했다. 바퀴가 고장 난 캐리어, 전원이 잘 켜지지 않는 선풍기 등, 창고에 숨어있던 녀석들에게도 안녕을 고했다. 저금통에 있는 동전도 입금하고, 오래된 USB도 처분 완료.




3. 이번에는 계획이 있습니다.


부지런히 집안을 비워가고 있었지만, 동시에 아이 물건이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힘들게 9박스를 비웠건만, 기저귀, 분유통, 아기 빨래 세제 등 아이를 위한 물건 세 박스가 곧바로 채워진다. 버린 만큼 다시 채워지면, 우리 집은 다시 어질러지는 것일까?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계획이 필요하다. 두 명이 살면서 방치했던 공간이 어질러졌다면, 이제 세 명이 함께 살면서부터는 전략적으로 접근해 봐야지. 아이를 위해 비운 공간을 수면, 식사, 옷 세 구역으로 나눠봤다.


수면 존. 아기 침대를 놓기 위해 안방 침대 배치를 바꿨다. 아기침대를 다시 조립하고, 안방으로 들여왔다. 이제 이 공간에서 아기침대와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식사존. 기존에 도마와 커피 머신 등이 잡다하게 있던 공간을 비웠다. 이 공간에 분유포트, 분유 소독기 등이 들어갈 예정. 콘센트가 없어서 전원을 어떻게 끌어올지는 아직 고민이다.



의류 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장에 아이 옷과 각종 물품을 넣어보려고 한다. 아기옷은 모두 세탁을 하면서 다시 수납할텐데, 과연 이 옷이 다 들어갈 수 있을까?


.


수납장에 넣을 수 없는 물건도 꽤 많다. 감사하게도 지인분들께 여러 물건을 나눔 받았는데, 부피가 큰 것은 베란다에 일단 넣어두었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장난감, 바운서, 각종 쿠션, 카시트까지 넉넉히 주신 덕분에 베란다는 지금 포화상태다. 


이 많은 물건들을, 또 어디에다 정리해야 할까?



나름대로 계획을 했건만, 넘쳐나는 물건 속에서 우리 집은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 더 큰 집에 살았다면 조금은 더 여유가 있었을까? 여러 고민이 들지만, 뭐 어쩌겠는가. 지금 형편에 맞게 최대한 준비해 봐야지.

이전 06화 왜 아직 아이도 안 태어났는데, 육아일기를 써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