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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쁨작가 마드쏭 Oct 18. 2022

'혼자'라는 두려움에서 만난 '나'

잠자고 있던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뭐야, 내가 밤길에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건가?! 아빠는 내가 조금만 늦게 와도 항상 데리러 와주시는데 이 사람은 내가 걱정도 안 되나 봐.' 



 대학생 때 남편과 연애시절 함께 맞이한 크리스마스이브다. 연애한 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남편에게 토라져 입을 다물었다. 친구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놀다가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준 남편. 그리고 나는 버스를 타고 밤늦은 시간, 인적 드문 어두운 길을 걸어 기숙사로 향했다. 30여분 어둠 속을 걸어가는 동안 내가 늦으면 항상 마중 나오셨던 아버지와 비교하며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게 맞는지 의심했다. 사랑을 의심하니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고 얼굴을 마주 보기도 싫었다. 남편은 내가 그런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놀고 있을 테지. 



 다음날 아침 나의 문자에서 차가움이 느껴졌는지 걱정으로 달려온 남편. 이유를 몰라 답답해하며 내가 입을 열 때까지 차 안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우리 집은 딸만 둘이라 그런지 늦게 오는 날이면 차가 없으셔도 아버지가 항상 데리러 오셨어. 그런데 어제 늦은 시간인데도 데려다주지 않아서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져 서운했어.'라고 입 밖으로 꺼낼까 말까를 수십 번. 단지 하룻밤 데려다주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사랑까지 의심하는 내가 유치하고 작아 보였다. 하지만 내가 침묵을 지키는 동안 옆에서 기다려준 남편 덕분에 내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었고 다시 남편의 보호망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 때 외국으로 교환학생이든, 워킹홀리데이, 해외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은 막연한 로망이 있었다.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같이 할 사람이 없었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곳은 나에게 어둠만큼이나 두려운 곳이었다.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은 어둠 속에 갇힌 것처럼 홀로 있는 느낌이다. 남들은 혼자 떠나는 여행에 대한 꿈을 가지고 실행하기도 하는데 나는 혼자 떠나는 여행을 원하지도 상상해보지도 않았다. '혼자 여행을 왜 가? 여행은 가족과 같이 가야지. 혼자 무슨 재미로 가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여태 해보지 않았던 것을 나에게 선물로 준다면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미션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여태 해보지 못한 것... 원하지 않았지만 남들이 다 원한다는 '혼자 하는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남편과 아이들의 동의를 구하고 가까운 부산으로 단 하루지만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 아침 9시 전에 나가 밤 12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함께 하는 여행은 즐겁지만 같이 있는 사람을 챙기고 맞추느라 나에게 집중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혼자만의 여행은 오로지 내가 보고, 듣고,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감각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날 점심, 저녁때 먹은 비빔 당면과 제주당근퓨레샐러드를 생각하면 지금도 입에 침이 고인다.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바닥에서부터 위로 힘차게 솟아올라 떨어지는 물과 다양한 빛깔의 화려한 춤의 향연, 낙조분수쇼를 즐겼다. 내가 왜 그동안 어둠을 무서워했을까. 어둠은 나를 위협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빛이 잠시 사라진 자연스러운 상태일 뿐인데... 어둠이 있으니 낙조분수쇼도 즐길 수 있었다. 



 마산으로 돌아오니 밤 12시 가까운 시간이라 시내버스는 이미 끊겼다. 30여분 집까지 걸어오면서 '콩닥콩닥' 다시 어둠이 무서웠다. 내 옆을 지나가는 낯선 남자들도 무서웠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가슴 졸이며 걷고 있는 내가 보였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저 사람들은 자기 갈 길을 갈 뿐이고 나도 내 길을 가면 된다. 세상이 나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두 딸에게 두려움 없이 씩씩하게 자신을 보호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태권도를 가르치듯이 나도 필요하다면 그런 것들을 배울 수도 있다. 더 이상 남에게 나를 맡기지 말자. 그날 어두운 밤길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혼자만의 여행을 선언했기에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은 없었지만 그 시간 내가 함께 한 사람은 그동안의 '나약한 나'가 아니었다. '나 존재'로 빛나고 있는 나와 함께 하고 있었기에 든든했다. 어둠은 더 이상 어둠이 아니었다. 우주와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처럼 여겨졌다. 나도, 그 시간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우주의 한 일부분이었다. 



 이젠 어둠이 무섭지 않다. 밝은 낮에는 볼 수 없지만 원래부터 거기서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는 시간이고 때로 솟구쳐 떨어지는 화려한 분수쇼를 볼 수 있는 시간이며 광대한 우주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마치 잠자고 있던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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