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동 Sep 10. 2024

나의 묘비명


안나야. 늦더위 속 안부한다. 오늘 하루 잘 보냈나?

몇십 년 만의 기록적 폭염이라 하니, 에어컨도 없던 습도 200%의 우리 집 마당이 생각나네. 여름휴가라고 집에 와선 비지땀 흘리며 삼계탕 먹고 모기장 치고 올망졸망 한 방에서 여름밤을 보냈지. 어떻게 그랬나몰라.


내 인생 터닝포인트는 2019년 라일락 지던 봄.

엄마와의 이별이라고 말했었지.

사실... 나는 지금 생각해도 어안이 벙벙하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아무렇지도 않게, 준비도 없이 죽을 수 있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죽음의 의미는 그런 것 같다. 이제 다시는 못 보는 것.

그래서 더 애달픈 생각에 사무치는 게 아닌가 싶다.


누가 그러더구나. 세상을 떠난 이는 ‘멀리 긴 여행’을 떠난 것이라 생각하라고. 당장 볼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서 여행을 즐기며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산 사람은 오늘을 살라고 말이야.


살 날이 많은데 무슨 이런 얘기를 하냐고 역정을 낼지도 모르겠지만, 몇 해전 접한 책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통해 죽음은 그저 끝이 아닌 현생을 더 값지게 살아가기 위한 준비과정이 아닌가 하고 말이야.


묘비명은 산자가 죽은 자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이자, 죽은 자가 산자에게 전하속 깊은 인사 아닐까 싶다. 유명인사들은 유머러스하고 아름다운 비문을 남기기도 했는데 거창하진 않지만 나도 생각을 한 번씩 해봤다.

나는 후회 없이 이렇게 쓰고 싶다.

세상, 잘 놀고 잘 살았다.


지난주 친한 강사님들과의 스터디 모임에서 '나의 묘비명'이란 주제를 꺼내 보았다. 다양하게도 얘기하더라.

몇 가지 소개해 본다.


너는 아닐 줄 알지?(누구나 다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한다)

억울해! (매일 바쁘게 사는 본인은 그날부터 당장 일을 줄이겠다더구나)

고민만 하다 세월 다 갔네 (소심 성격 고친다더라)

언제든 내게 놀러 오세요 (현생을 사는 이들 힘들 때 언제든 오라고 열어 두고 싶다더라)


참 훌륭한 이들이다. 휴일 시간 내서 만나 책 읽고 토론하고 강의 스터디하고... 건강하게 바쁜 이들인데 그만큼 쉴 땐 또 잘 쉬더라. 나는 늘 보고 배운다.


우리 엄마 연이씨는  열심히 살았고 우리가 반듯반듯 살 수 있도록 길라잡이가 되어 줬던 것 같아.

그 철학을 우리가 잇자. 내 자식들에게 내 사람들에게 전하고 살면 우리와 늘 함께 일거라고 생각한다. 늘 내 곁에서 동지로 함께 해줘서 고맙다.


이렇게 오늘로써 너에게 보내는 편지에 쉼표를 찍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