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재봐도 열이 없는 걸 보면 분명 신종 코로나는 아닐 것이다. 의사들 판단도 마찬가지.
동네병원 의뢰서를 들고 강남에 있는 3차 병원을 찾아갔다.
입구부터 손소독, 접촉 가능성 문진표 작성 후 통과자에게 스티커 부여. 철저하네.
아이 때문에 와본 적은 여러 번이지만 나 때문에 온 것은 처음이다. 어리바리.
결국 오랜 기다림과 원무과를 여러 번 들락거리며 오늘의 병원 투어를 끝냈다.
원무과(잘못 감)-호흡기내과 접수대-원무과 접수-영상의학과-호흡기내과진료-폐기능 검사(이상증세로 중단)-호흡기내과진료-심장내과 예약-소화기내과 접수-암센터 접수대(교수의 타 병동 진료;;) 당일 진료 마감 통보-소화기내과 예약(암병동에서 예약 안 해준 것 이상해함)-원무과 기수납 환불 및 재수납
약 2시간 50분 동안 병원 여행을 했다.
어제저녁 19번째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서 나는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무증상 확진자도 외국에서는 나왔으니까 말이다. 불안에 떠는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침착하게 가족들과 다시 이야기하며 나는 잊었다. 벌어지지 않은 일을 걱정하지 말자고.
오늘 병원을 가면서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하나는 뭔가 문제가 발견되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일정에 문제가 생길 경우 기민하게 대응할 생각을 했다.
또 하나는 당장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대학병원이니까 검사나 진료 한 번 받으려면 한참을 몇 날 혹은 몇 주도 기다려야 할 테니까.
최악의 경우는 심각한 무언가가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아 고생한 작년처럼 되는 것 역시 최악인 것 같다. 나는 결코 2018년 12월 13일 이전처럼 숨을 쉴 수 없다. 회복이 너무 어렵다. 가능할지 어느 의사도 말해줄 수 없다. 왜냐하면 검사하면 내 몸은 정상이라고 데이터가 말해주니까 말이다.
호흡곤란에 따른 전신 저림 현상으로 폐기능 정밀검사에 실패했지만 기본검사가 정상이라고 한다. 그래, 항상 몸에는 이상없다는데 난 아프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말을 조금만 길게 해도 숨이 차고, 원무과를 두어 번 왔다 갔다 하고, 폐기능 검사실 고작 복도 좀 걸었을 뿐이어도 숨이 차는 이 현상을 의사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물었다.
'그럼 신경 정신과 가보면될까요?'
마지막엔 진료를 권할 수 있단다. 심장내과와 소화기내과에서 아무런 소득이 없다면. 2018년 12월 21일에도이미 심장초음파로 본 내 심장은 멀쩡했는데,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 소망은, 다음 주 소화기내과 진료에서 그냥 '위에 염증이 하나 있군요.'로 이 소동이 일단락되기를 간절히 바래어 본다.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데 계속 통증을 느끼는 것은 참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2시간 50분 동안 나는 병원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아마 실제로 직접적인 진료를 받은 시간은 30분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럴 걸 대비해서 책을 가져갔다. 중간중간 나도 모르게 의사, 간호사, 각 검사 담당자, 환자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작년 재작년 2년 동안 평생 가볼 병원을 죄다 가본 것처럼 많이 다녀봐서 병원 분위기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많은 분노와 답답함을 겪어봐서.
오늘만 해도 병동과 원무과를 왔다 갔다 하게 만들며 환자의 기다림을 지루하지 않게 애써주는 병원 서비스(?) 디자인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며 헛웃음이 나왔다. 병원을 서비스라 생각하지 않겠지만, 디자인계에서는 의료 시스템의 환자와 의사의 불편한 점을 개선하려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꽤 불합리한 프로세스처럼 보이는 이 구조는 누가 만들었는지 참 허허허.
오래 기다렸다고 불평하시는 어르신들,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달갑지 않은 환자를 여느 때처럼 다루는 간호사들. 바쁘지만 침착하게 환자의 상태를 고려해주는 폐기능 검사 담당자에게 약간 감명을 받았다. 저 정도 되면 엄청 예민해질 텐데 깨나 침착했다. 베테랑인 듯. 너무 바빠 보여서 '괜찮으니 천천히 하시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상대 역시 '의료는 서비스가 아니'니 마냥 기다리고만 있는 환자인 나에게 그렇게 미안해 하진 않는 눈치다. 진료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전화번호 두 개를 요구하기에 다 말했더니 하나는 누구 번호냐고 묻는다. 남편 거라고 말하니, '결혼 안 하신 줄 알았는데..'라는 속마음을 혼잣말로 말한다. 상대의 선입견을 확인하는 발언임에도 그렇게 듣기 싫지만은 않은 것이 여성 기혼자에 대한 편견은 상대뿐 아니라 나에게도 있는 게 분명하다. 이 사람들도 역시 사람이다. 허허. 소화기내과 접수대의 직원은 나름 친절했다. 암병동에 가서 만난 직원은 딱 봐도 일한 지 몇 년 안된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단정 짓는 것은 금물. 단호박과 같은 말투와 매뉴얼스러운 말투는 답답한 환자를 많이 겪어본 탓이리라. 이 역시 내가 이해하는 수밖에. 옆 동에서 왔다고 하니 다시 옆 동으로 가란다. 말이 안 통할 것 같고 갑질 하고 싶어 하는 이 직원에게 나는 맘껏 갑질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었다. 그냥 되돌아가서 말 통하는 직원과 말하는 게 나의 심리적 안정에도 좋을 테니. 돌아간 병동에서 맞이한 접수대 직원은 예약을 안해준 게 의아하지만 과하지 않은 친절함으로 안내를 잘해준다.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감히 그분들의 성격과 조직문화와 직장생활의 고충을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저 웃으며 넘길 뿐이다.
카페에 앉아 오늘 나의 행보와 주변인들을 관찰하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이 들 때, 얼른 기록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적어본다.
나를 가만히 관찰하는 것,
타인을 가만히 관찰하는 것,
그 안에는 각자의 사정이 가득 담겨있다.
정말, 아담 스미스의 말처럼 인간은 슬픔보다는 기쁨에 더 공감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래서 그토록 자신의 슬픔과 비참함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괜히 생각이 든다. 어차피 말해도 나의 힘든 처지의 절반도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는 생각. 그 말이 다시금 떠오르는 지금이다.